나복두선은 매우 희귀한 선(禪)이다. 아마 처음 들어본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희귀한 선이 많지만 나복두선은 그 가운데서도 더 희귀하다. ‘나복(蘿蔔)’ 또는 ‘나복두(蘿蔔頭)’란 밭에서 자라는 ‘무’ ‘큰 무’를 가리킨다. ‘무’의 한자표기이다.
무는 첫째가 색이 희고 미끈해야 한다. 또 무는 물이 많아야 하는데 칼로 잘랐을 때 물기가 뭉실 솟아올라야 한다.
그러지 않는 무는 좋은 무가 아니고 바람이 들어간 무는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 무 가운데서도 조선무는 전라도 항아리처럼 짧고 통통하고 왜(倭)무는 긴 데 주로 단무지(다꾸앙, 닥꽝)을 담글 때 쓴다. 무를 채로 썰어서 나물로 만든 것을 나복채(蘿蔔菜)라고 하고, 흰쌀에 무를 썰어 넣어 쑨 죽을 나복죽(蘿蔔粥)이라고 한다.
무(蘿蔔)의 강도는 배추보다는 단단하지만 나무나 돌에 비하면 단단하지 못하다. 채소류로서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던지면 마치 소형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박살난 무 조각이 낭자(狼藉)를 이룬다.
‘나복두선’이란 무와 같이 야물지 못한 선(禪), 단단하지 못한 선, 철저하지 못한 선을 나복두선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인가(認可)를 남발하는 선승, 수행자 지도를 잘못하는 선승도 나복두선이라고 한다.
‘벽암록’ 98칙 천평양착(天平兩錯, 천평의 두 번 실수) 공안에는 나복두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인즉슨 천평(天平)이라는 스님이 철저하지 못한 엉터리 선(禪), 야물지 못한 나복두선을 수행한 후 깨달았다는 자만심에 도취하여 가는 곳마다 함부로 지껄인다는 것이다.
“천평은 일찍이 진산(進山) 주(主) 선사를 참방한 이래, 제방(諸方)의 여러 선원을 다니면서 (엉터리 禪인) 나복두선을 배웠다. 그리하여 깨달았다는 생각이 뱃속(머릿속)에 가득 차서 가는 곳마다 함부로 큰소리 치고 있다.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天平, 曾參進山主來, 他到諸方, 參得些蘿蔔頭禪, 在皮裏. 到處便輕開大口道, 我會禪會道).
나복두로 만든 도장, 인장(印章)을 ‘나복인(蘿蔔印)’이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동과인자(冬瓜印子)’라는 말이 있다. 동과(冬瓜)란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성 식물로서 여름에 노란 꽃이 피며 가을에는 호박과 같은 것이 달린다. 그것으로 만든 인장(印章), 도장이라는 뜻인데, 호박으로 만든 도장(冬瓜印子)과 무로 만든 도장(蘿蔔印)이 얼마나 단단하겠는가? 찍으려고 누르면 으스러질 것이다.
원오극근은 ‘벽암록’ 98칙 평창에서 깨달았다고 큰 소리 치고 있는 천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롱하고 있다.
“천평은 여기저기 선원에서 호박도장을 가지고 인가해 주는 선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아가지고는 ‘나는 이제 불법의 기특한 곳을 알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 주지 않으리’라고 마음 먹고 있구나.”(只管被諸方, 冬瓜印子, 印定了. 便道, 我會佛法奇特, 莫敎人知 ‘碧巖錄98評唱’)
간화선의 거장 대혜 선사는 장사인(張舍人)에게 답한 편지(‘서장’ 張舍人 章)에서, “절대로 동과(冬瓜)로 만든 도장을 가지고 어루만져 주면서 깨달았다고 인가해 주는 엉터리 선승들을 따르지 마십시오(切忌被邪師, 順摩, 將冬瓜印子印定) 이런 자들은 도마죽위(稻麻竹葦, 벼, 삼, 대나무, 갈대)처럼 아주 많습니다. 당신은 총명하고 식견이 있으므로 이런 악독의 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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