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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차 마시는 살림살이가 일상 삼매의 소식이라 이 소식을 알겠는가! 차(茶)” - 경봉 스님 글 中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봉 스님의 다풍(茶風)을 잇는 찻자리가 마련됐다.
4월 3일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에서 열린 극락선차 삼소다회는 경봉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 입적하기 전까지 60여 년 동안 주석하며 후학과 신도들을 제접 했던 공간을 처음 다회를 위해 개방한 행사였다. 경봉 스님의 입적 30주기, 탄신 120주기 기념사업을 위해 결성된 경봉선풍 중진불사회가 주최했으며 고려시대 제정된 선원청규를 기반으로 고려선차 행다를 연구하는 원행 스님이 직접 차를 다려 내고 경봉 스님의 가르침을 맑은 차에 담아 전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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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앞서 극락암 선원장 명정 스님은 “경봉 노스님께서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시자야, 차 한 잔 다려 오너라’며 한잔 차에 선기를 담아 대중을 교화하신 분이다. 또 10세 때부터 입적 전까지 일지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덕담, 서간문까지 기록으로 남겨 수행자의 진면목은 물론 한국 불교의 시대상도 알 수 있게 했다”며 “스님의 덕화를 이 시대에 되살리는 의미를 담고 그 선풍을 잇겠다는 후학들의 원력과 발심을 모아 현대인들에게 선의 정신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취지를 전했다. 명정 스님은 이 자리에서 오는 7월 유품전에서 선보일 경봉 스님의 일지, 만해 스님이 쓴 경봉 스님의 사미 때 법명 그리고 60년대 구하 스님과 선방에서 나눈 법담을 경봉 스님이 글로 남긴 해제운 등을 공개하며 짧은 편지 하나까지 기록하고 모아 둔 노스님의 세심함을 회상했다.
이 날의 삼소다회는 녹차, 채식 발우공양, 황차(발효차), 대중 선차 순서로 진행됐다. 맑은 녹차를 우려낸 다구는 생전 경봉 스님이 쓰던 다관을 사용 했고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차도구가 활용됐다. 정성스레 차를 다리는 원행 스님의 손길에는 하심과 정성이 베여 나왔다. 다회가 열린 삼소굴 내에는 경봉 스님의 글씨를 걸어 생전 스님의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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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공양 역시 원행 스님이 직접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사찰 음식을 선보였다. 송원대의 가요(哥窯) 접시를 활용해 전통 발우공양이 아닌 변화를 시도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간결하고 정갈한 발우 공양에 이어진 황차 찻자리에서는 더운 물이 담긴 은주전자에 황차를 바로 넣어 끓여 냈다.
삼소다회는 극락선원 입승 진각 스님의 선방 차생활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됐다. 진각 스님은 “극락암 선방에서는 사시공양 후 항상 다각실에서 차담 시간을 갖는다. 이 자리에 선원장 스님도 자주 참석해 수좌들을 격려하는데 때로는 선기 깊은 문답이 오가기도 한다”며 “찻자리에서 어른 스님과 수좌들이 격의 없이 대화하고 탁마하는 가풍은 경봉 노스님 때부터 이어졌다고 들었다. 우리 역시 노스님의 당부를 늘 새기며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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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선풍중진불사회는 언론인을 대상으로 가진 이번 첫 삼소다회를 시작으로 문화계 인사, 종교인, 한중일 선사들을 대상으로 4차에 걸친 다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선문화체험 템플스테이를 통해 일반인들과도 다선일미의 향훈을 나눌 전망이다. 경봉 스님의 유품 400여 점을 공개하는 전시회는 오는 7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열린다. 특히 7월 16일 경봉 스님 30주기 추모 다례재를 기점으로 스님의 선풍을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하는 통도선문화재단이 발족된다. 이 재단은 명상센터 건립, 소외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 학술 연구 및 지원, 불교문화콘텐츠 대중화, 선문화 선양을 위한 평생 교육 등의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극락암 도감 혜원 스님은 “경봉 노스님께서는 찾아오는 사람마다 차를 대접하고 자비의 법을 펼치셨다. 현재의 선원장 명정 스님께서도 노스님의 가르침을 차를 통해 그대로 실천해 온 분”이라며 “60여 전 노스님께서 직접 작성한 호국선원취지서를 설립 이념으로 경봉 스님의 가르침이 후대에 지속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