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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낙산사 홍련암

잘 여문 신심 붉은 연꽃 속 관음 피우다

671년 의상대사가 관음 친견한 굴 위에 창건
2005년 화마도 피해 입히지 못했던 기도도량

 

 

▲안개가 감춘 낙산사 홍련암 속살이 드러났다. 신심은 사라지고 미움만 남았던 마음을 웃게 했다. 푸른 빛 짙은 바다는 파란 하늘과 선을 그었다. 홍련암은 오봉산 끝자락 바위 절벽 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안개가 속살을 감췄다. 경봉 스님이 쓰신 원통보전 편액, 잔혹한 화마서 살아남은 7층 석탑이 흐릿하다. 형형색색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는 연등도 빛을 잃어갔다. 원통보전 옆 해수관음으로 향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길은 조고각하(照顧脚下)다. 발 밑 찬찬히 살펴 걸어야 했다.

 

낙산사 어디에서도 볼 수 있던 해수관음도 자비로운 미소를 숨겼다. 안개는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생긴 일들로 불편해진 마음이었다. 신심은 없고 미움만 남았다. 낙산사 홍련암은 흔들리는 신심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걸었다. 표지석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에 선 마음의 위치를 알려줬다.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저기 어디쯤 해수관음과 관음성지 홍련암이 있을 게다. 발 밑 살펴 걸었다. 연등이 길을 수놓았다. 믿음은 환희로 다가왔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해수관음의 엷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객 한 명이 가슴께 모은 두 손과 가부좌로 간절함 맘을 틀어쥐었다.


다음날 안개는 자취를 감췄다. 날 좋은 날 ‘꿈이 이루어지는 길’ 표지석 돌탑과 해수관음이 마음에 들어왔다. 길 끝에서 해수관음에게 참배하고, 홍련암으로 향했다. 푸른 빛 짙은 바다는 파란 하늘과 선을 그었다. 홍련암은 오봉산 끝자락 바위 절벽 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홍련암은 낙산사 산내 암자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낙산사가 산문을 열 때부터 관음기도처였다. 묘지서 해골에 괸 물 마시고 돌아선 원효 스님과 달리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의상 스님이 창건했다. 670년(문무왕 10), 의상은 신라로 돌아와 당나라의 침공계획을 알렸다. 신라는 당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허나 전쟁은 수없이 많은 생명붙이들을 도륙했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남겨진 자……. 민초들 고통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의상은 관음보살을 떠올렸으리라.


의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강원도 양양 해변가 오봉산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일연 스님은 의상이 홍련암으로 기도하러 떠났던 일들을 상세히 적었다. ‘삼국유사’ 제3권 제4 탑상편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관음(觀音) 정취(正趣) 조신(調身)’ 부분이 전하는 기록이다.


의상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기도한 지 일곱 날만에 방석을 물 위에 띄웠다. 팔부 시중이 나타나 굴속으로 의상을 안내했다. 의상이 공중을 향해 참례하고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받아 물러나왔다. 동해 용도 여의보주 한 알을 바쳤고 의상은 다시 일곱 날 동안 재계하고 나서 관음의 용모를 친견했다. 관음보살은 의상에게 일렀다. “좌상 산꼭대기에 한 쌍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짓는 게 마땅하다.”


의상이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았다. 그러자 의상은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모셨다. 이윽고 대나무가 사라지자 그제야 관음 진신이 거주함을 깨달았다. 의상은 절 이름을 낙산사로 하고 받았던 구슬을 봉안하고 떠났다.


의상이 방석을 물 위에 띄운 곳이 현재 홍련암 자리다. 천룡팔부 시중 따라 들어간 굴은 홍련암 밑 관음굴이다. 법당 마루 가운데 작은 구멍으로 굴속을 넘나드는 바닷물을 볼 수 있다. 홍련암(紅蓮庵)은 바다 위 붉은 연꽃이 솟아나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현신했기에 이름이 홍련이다.

 

 

▲낙산사 산내 암자 홍련암은 붉은 연꽃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의상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 고려 후기 고승 체원은 의상의 ‘백화도량발원문’을 해설한 서문에 “의상대사가 낙산 관음굴에 이르러 예배하고 발원하면서 이 글을 지으셨다”고 했다. ‘백화도량발원문’은 단어 하나하나에 절절함이 묻어난다.


“관음보살의 대원경지 가운데 있는 제자의 몸으로 귀명정례 하오니 제자의 거울 가운데 계신 관음대성이 소리를 발하사 가피를 입혀 주소서. 바라옵건대 제자는 세세생생에 관세음을 일컬어 본사로 삼되 보살이 아미타여래를 이마에 이고 계신 것 같이 제자 또한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정대하고 십원육향과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를 모두 균등하게 지니며(…중략…)제자의 이 몸 다할 때 대성께서 광명을 놓으셔서 모든 두려움을 떠나 마음이 편안하게 해주시고 잠깐 사이에 백화도량에 화생하여 여러 보살들과 함께 바른 법을 듣게 하소서.”


절절함. 가늠할 길 없다. 원통보전 화주 원행(48) 보살은 죽음 문턱에서 절절히 관음보살을 부르짖었다. 1999년 늦여름, 해수욕을 하다 파도에 휩쓸려 먼 바다로 떠내려갔다. 망망대해에 그 혼자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에 질식했다. ‘죽나보나’라고 생각이 들 무렵, 해수관음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전 하지 않던 기도를 했다. 부처님 믿을 테니 살려만 달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는 극적으로 구조됐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앉으니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6년이 흘렀고 해수관음은 멀어져갔다. 남편은 바람났고 주식은 떨어졌다. 삶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명치가 꽉 막혀왔다. 친한 언니가 “살아야 한다”며 절로 이끌었다. 스님은 “참회해야 한다. 촉각을 다툰다”고 했다. 강남 봉은사에 새벽기도를 다녔고, 낙산사를 배회했다. 낙산사 홍련암에 깃든 관음이 가슴에 들어와 앉았고, 원통보전 화주로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 돌탑 너머 해수관음.                                  

 


관음은 깃들어있었다. 홍련암은 2005년 낙산사를 휩쓸고 간 화마도 피해갔다. 그래서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밤 안양서 온 3명의 보살들도 철야기도를 신청했다. 7년 동안 홍련암 기도를 접수하고 있는 보살은 “바라던 원 모두 이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하도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노력 없는 기도는 이룰 수 없단 말에 방점을 찍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도는 다를 바 없으리라. 역사의 강물을 관통하며 흘러내려온 신심과 믿음이 전부 아닐까. ‘고려사’에 따르면 정2품 관직까지 오른 명관 유자량도 홍련암 관음기도를 성취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유자량은 명종 정사년(1197) 병마사가 돼 10월 관음굴 앞에서 분향 배례했다. 파랑새가 꽃을 물고 날아 와 갓 위에 떨어뜨리고 사라졌다. 유자량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재상들과 ‘기로회’를 만들어 부처님 섬기기를 계속할 만큼 불심이 돈독했다.


경봉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스님은 1930년 2월25일 이곳에서 관음기도를 했다. 13일째 되던 날 참선 중에 바다 위를 걸어 다가오는 관음보살을 봤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원통보전과 홍련암 편액을 썼다.

 

 

▲ 안개 속 합장한 불자.

 


홍련암 법당엔 손구성(52)씨가 홀로 앉아 있었다. 관음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고요히 듣고 있었다. 홍련암 법당 구멍은 단순히 관상용이 아니었다. 관음 친견 혹은 파도소리를 관함으로써(觀音) 깨달음을 얻는 수행 장치일지도 모른다.

 

조용헌 원광대 원불교학대학원 박사는 동양종교학과 강사 때 ‘관음도량에 숨겨진 해조음(海潮音)의 비밀’을 발표했었다. 그는 ‘능엄경’과 ‘법화경’을 근거로 홍련암 법당 구멍의 비밀을 밝혔다. ‘능엄경’에는 “진정한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들음’으로써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묘음(妙音), 관세음(觀世音), 범음(梵音), 해조음(海潮音)에 집중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도 묘음(妙音), 관세음(觀世音), 범음(梵音), 해조음(海潮音)을 수승한 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인 이유도 들었다. 1998년 6월 일본대학 겐지호타 교수팀이 발표한 ‘파도에서 발생하는 초음파가 인체의 뇌파에 미치는 생리학적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인간은 청각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그 중 파도소리는 뇌 속 알파를 활성화시켜 정신집중을 높인다”고 했다. “이는 깊은 명상에 몰입할 때 나타나는 뇌파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는 얘기다.


손씨도 파도소리에 혼란했던 맘 가라앉히며 저렇게 두 눈 감고 있는 걸까. 불쑥 “오늘부터 진짜 108배를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 동안 절 1배에 담긴 의미를 곱씹고 되새겨왔다. 술에 젖어 살던 삶도 접었다. 108배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믿음에 의문부호를 달자 “여긴 관음 계시는 홍련암이 아닌가” 되물었다.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원통보전과 7층 석탑.

 


원효도 관음굴을 찾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터. 소문을 듣고 찾아가 예를 드리려고 했다. 흰옷 입은 여인에게 벼 달라고 농을 던지고 열매 맺지 않았단 답을 받았다. 다리 밑에선 개짐(생리대) 씻은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떠 마셨다. 그러자 소나무 위 파랑새 한 마리가 말했다. “스님은 가지 말라.” 소나무 아래 신 한 짝을 발견한 원효는 절 관음보살상 밑 남은 신 한 짝을 보고 그제야 관음을 만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두 번이나 스스로 관음 친견할 기회를 걷어찬 셈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 원효는 여물지 않았다. 관음보살을 만나지 못한 이유다. 천년 세월 넘게 관음은 계셨다. 여문 신심으로 친견한 이 몇이랴. 번뇌와 탐욕이 부처님 마음에 안개를 드리운 게 아닐까.


어제 안개 속에 속살 감춘 홍련암, 오늘 늦봄 햇볕에 자태를 드러냈다. 세파에 찌든 우리네 마음, 곧 속살 내놓으리라.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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