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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安心)한 MB

기자명 법보신문

‘편안한 마음으로 취하고 버리는 사이, 그 두 가지 경계에 휘말린다.’ 중국 지공 선사의 ‘대승찬’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편안한 마음(안심. 安心)’이란 선사들이 누누이 강조해 왔던 ‘평상심(平常心)’이나 ‘평온심(平溫心)’과는 다른 개념이다. ‘깊은 사유 없이 내는 마음’,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 없이 내는 마음’ 등을 이른다. 한마디로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마음에 들면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신이 ‘버리고, 취한 것’에 스스로 걸려든다는 점을 지공 선사는 짚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으로 촉발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아직은 찻잔 속 회오리로도 볼 수 있겠지만 갈등 국면이 더 심화될 경우 허리케인으로 돌변할 수 있기에 양측이 긴장하고 있다.
최근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일본에게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은 사과한 적이 없다. 독도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역사 왜곡을 통해 ‘자기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반성조차 안 하고 있는 일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내 땅에 내가 가는데 무슨 문제’인가.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하라는데 무슨 문제’인가. 과연 그럴까?


같은 말도 누가, 언제,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천차만별이다. 하물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했지만 그의 독도 방문은 갑작스러워 보일 뿐이다. 현 정부는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외교기조를 유지해 왔다. 여기에 대통령이 일본에 가야만 하는 급박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독도 방문을 놓고 ‘포퓰리즘’,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왕 사죄’발언도 일맥상통한다.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언지라도 내 보였는가? 이것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일왕 내한’을 스스로 전제 하고 ‘사죄하라’ 요구한 것 아닌가.


일본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제 카드로는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내 보였다. 우리는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가. ‘무대응’원칙을 고수하며 ‘통화스와프 영향은 미비할 것’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선, 외환위기에 취약한 우리가 한일 통화스와프 축소에 자유로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이어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른 ‘중재 절차’에라도 들어가면 어찌 할 것인가. 상대국이 불응하면 법적 절차가 중단될 수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와는 달리 해양법 협약은 한쪽 당사국의 신청만으로 재판이 시작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만의 하나 이게 사실이라면, 이에 대비한 법적 논리는 충분히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 ‘시원하다’고만 하지 않고 우려부터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이 남긴 건 ‘독도 분쟁화’ 뿐이다. 누가 얻고, 누가 잃고 있는가는 자명한 사실이다. MB는 ‘가고 싶은 데 갔고, 하고 싶은 말’했다. ‘안심 하고 취사’ 했지만 그에 따른 파장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취사’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게 됐다. 후자의 ‘취사’는 전자와 달리 안심하고 선택해서는 안 된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냉철한 이성과 결단이 뒤따른 선택이어야만 한다. 그 ‘취사’에 휘말린 건 MB 본인 뿐 아니라 ‘한국’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한다면 ‘독두수호 표지석’만 세우고 싶었던 MB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최초 독도 방문’이라는 명패를 ‘취하지 않고 과감히 버렸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은 ‘안심’하고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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