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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합일 한국불교의 힘 체코에 전하는 초석 되길

보조 저술 체코어로 번역하는 토마스 호락 찰스대 한국학과 조교수

불교에 매료돼 한국학과 선택
불교학자 못됐지만 번역 매진


수행에 관심 많은 서구인에
보조 스님은 ‘논리적 스승’

 

 

▲토마스 호락씨는 “서구인들에게 논리적 이해 과정없이 수행만 앞세운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체류 기간은 얼마 안 남았지만 취재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세상에 뜰 욕심은 없으나 일단 사람을 만나러 여기에 왔기 때문에 만나야죠.”


놀랍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에 그는 완벽한 한국어 문장으로 답신했다. 하루 뒤 조계사에서 만난 그의 한국어 실력은 더욱 놀라웠다. 그가 보조 지눌 스님의 저서들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있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토마스 호락(40)씨는 체코인이다. 찰스대 한국학과 조교수인 그는 두 달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 중이다.


“3년 전부터 번역을 시작해 ‘권수정혜결사문’, ‘수심결’, ‘계초심학인문’, ‘진심직설’, ‘간화결의론’, ‘원돈성불론’ 그리고 ‘불일보조국사비명’ 번역이 마무리됐습니다. 체코에서 오는 11월에 책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화엄론절요’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가 남아있는데 보조 스님의 저술 가운데 가장 양이 많고 난해한 텍스트라 이번에 참고자료 수집을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보조 스님의 저술을 줄줄이 나열하는 호락씨는 찰스대 한국학과에서 ‘한국학’으로 석사를, ‘한국문법에서의 품사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어린시절 그의 꿈은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우연히 읽게 된 ‘장자’를 계기로 동양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심은 자연스럽게 불교로 이어졌다. 하지만 체코에서 불교를 공부할 길은 막막했다. 인도학이나 산스크리트원전에 대한 연구는 일부 이뤄지고 있었지만 불교에 대한 연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찰스대 동아시아연구소(인문대)에 개설돼 있는 한국학과를 비롯해 중국학과, 일본학과, 베트남학과가 동양학을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그때는 꼭 한국불교를 공부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학과와 베트남학과는 왠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중국은 공산정권이라 내키지 않았어요. 그나마 한국학과에서 불교학을 일부 다루고 있었기에 한국학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1991년 한국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불교학은 교육과정 중의 일부였을 뿐, 그는 결국 불교학을 전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전공하며 방대한 양의 한국어 텍스트를 섭렵했다. 그동안 살펴본 고전과 논문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도 가늠치 못할 정도다. 특히 한문으로 쓰인 고전을 읽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한문 실력이 뛰어나다. “중국 고전에 비해 한국 고전들은 문장이 훨씬 쉬워서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호락씨는 그 과정에서 1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체류기간은 길어야 두 달, 짧게는 며칠에 불과했지만 한국어 실력은 부쩍 늘었다. 1997년에는 동국대에서 불교관련 강좌를 듣기도 했다.


한국어 실력이 쌓이고 다양한 고전을 접하면서 2009년 보조전서 번역작업을 시작했다. 출판이 목표는 아니었다. 한국불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간화선수행을 이해하는데 있어 보조 스님의 저술들은 가장 기본적인 자료였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관심은 대부분 명상이나 수행에서 출발합니다. 상대적으로 교리에 대한 이해 등 이론적 지식이 부족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간화선 수행을 앞세운다면 효과 자체가 없거나 심지어는 역효과가 날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인들에게 보조 스님의 저술은 간화선수행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설득력 있는 텍스트입니다. 보조 스님은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중천조로 특히 선교의 겸수를 통해 수행의 방향을 제시한 스님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체코의 출판사 대표가 번역본을 읽어보더니 출판을 권했다. 다행히 2010년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의 지원 사업으로 선정돼 출판에 탄력이 붙었다. 하지만 지원기간이 1년으로 한정돼 있어 아직 번역이 마무리되지 못한 ‘화엄론절요’와 ‘법집별행록정요병입사기’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도 번역의 고삐를 늦출 생각은 없다.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니까요. 일단 번역을 마치고난 후 학교에서 지원 받을 길을 찾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생기겠죠.”


출간한다 해도 많이 팔릴만한 책은 아니다. 체코에서 불교는 여전히 극소수의 외래 종교일 뿐이다. 최근 발표된 인구통계에서도 불교신자는 ‘기타종교’로 분류될 만큼 적었다. 하지만 호락씨는 “불교에 관심 있는, 특히 명상이나 선수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며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번역을 마치고 나서 제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불교에 대한 별다른 이해가 없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보조 스님의 책은 수행에 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글이 서구인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이라는 뜻이겠죠. 특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런 길잡이가 체코에도 필요합니다.”


보조전서 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불교수행, 특히 간화선 수행을 하는 체코인의 수가 비록 적지만 “수행에 관한 정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호락씨는 지적한다. 1년여 전 ‘한중일 불교 원전’이라는 책이 체코어로 출간(이 책의 번역작업에도 호락씨가 참여했다)됐고 ‘선가귀감’과 숭산 스님의 저서가 몇 권 소개돼 간화선 수행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보조 스님의 저서는 여전히 전무하다. “나는 결코 내세울 만큼 수행을 해보지도 못했고 방법을 잘 알지도 못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여전히 수행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은 정보의 부족도 한 몫 했다. 체코에서 몇 안 되는 선원을 찾아가 주말 정진도 해 보았고 아침에 여유가 생기면 좌선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그 갈증을 풀어내는 방법, 그 하나가 바로 이 번역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정신 차리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우스갯소리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체코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불교용어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뜻이 제대로 전달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진심직설’만 해도 ‘진심’에 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다양한 어감을 체코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한·체코어 사전 간행이 그의 또 다른 목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체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한글사전을 간행해 그 속에 불교용어들도 충실히 수록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그저 희망일 뿐이다. 그에 앞서 시인 고은 선생의 ‘화엄경’을 번역할 생각이다. 이번 한국 체류 기간 동안 고은 선생도 만났다. 한국불교를 이해하는데 경전 이상으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더욱 커졌다.


번역 작업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번 체류기간 동안에도 꼭 구하고 싶은 책 몇 권을 아직 수집하지 못했다. 특히 절판된 책들은 구할 길이 막막하다. 9월24일 출국이 예정돼 있던 호락씨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보다 많은 자료들을 온라인상에서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엔 전 세계 어느 곳의 논문이라도 온라인을 통해서 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서비스들이 비교적 잘 제공되는 나라이지만 여전히 많은 자료들, 특히 고전 텍스트에 관한 서비스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한국불교학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한국학과에 처음 입학할 당시만 해도 학과생은 전체 10명 안팎이었다. 신입생도 2~3년에 한 번씩만 선발했다. 하지만 현재는 학과생이 50여명에 이른다. 신입생도 매년 선발하고 있다. 올해는 무려 54명이 지원했다. 그 자신도 놀라는 성장세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많다. 한국학을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의 관심이 한국전통 문화나 사상 보다는 현대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에 더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쯤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관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불교를 ‘미신’으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미신이 오래가지 않아 한국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예언이 이뤄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물론 여전히 비불교적인 요소들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개혁하고 정법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한국불교에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이자 그가 찾아낸 한국불교의 희망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번역 작업 역시 체코 사회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히는데 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그 희망을 가꾸어 나가는 동안 불교에 목말랐던 젊은 시절 호락의 꿈을 이뤄줄 후학들도 그가 가꾼 옥토 위에서 함께 성장할 것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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