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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티베트의 귀족(貴族)세계-중

기자명 법보신문

달라이라마 영동 확인되면 ‘아계’ 귀족 격상

 

▲귀족은 가문의 재정과 사회적 신분의 지속성을 위해서 데릴사위·양자 등의 방법을 통하여 혼인과 가족의 재구성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티베트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티베트사회에서 귀족계층은 ①아계(亞谿) ②제본(第本) ③미찰(米扎)의 세 유형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아계’(亚谿)귀족가문은 주목할만 하다. 그 이유는 티베트 정교(政敎)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의 가문이기 때문이다. ‘아계’가문이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그 부모, 형제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말한다. ‘아계’란 권세와 재복의 명사를 존중하는 의미로 ‘부친의 장원’을 뜻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와 그 가정을 매우 존중한다. 불교의 윤회사상에 입각한 티베트인들의 사유방식은 달라이 라마 가정자체를 신격화한 ‘아계’라는 고유명사로 한정시키기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다. 이는 티베트가 ‘종교사회’이기에 가능하다.


‘아계가정’은 대량의 토지를 소유하며 최고의 권위와 신분을 보장받는 특수한 귀족계층이다. 그래서 귀족중의 귀족 ‘황금귀족’이라 불린다. 학계에서는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계층은 근대까지 6家의 아계귀족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6家의 황금귀족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제7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인 ‘상주파장(桑珠颇章
bSam-grub-pho-brang)’귀족. 티베트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상파(桑颇)’가문이라 칭한다. ②제10대 달라이 라마(楚臣嘉措, 1816-1837)를 주축으로 하는 ‘우타(宇妥 g. Yu-thog)’가문. ③제11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인 ‘팽강(彭康)’(Phun-Khang)가문. 티베트에서 정식명칭은 ‘팽조강새(彭措康赛)’이다. 이 가족의 경제적 지반인 장원은 ‘아륭(雅隆 Yar-klungs)’계곡 입구의 ‘창주(昌珠 Khra-vbrug)’라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공자재왕돈주(贡孜才旺顿珠 dKon-rtse-tshe-dbang don-grub)’가 이 집안의 설립자이다. 그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2번째 아들이 11대 달라이 라마의 영동으로 점지되어 황금귀족으로 귀속되었다. ④ ‘랍노(拉 Lha-Klu)’귀족가문. 이 가문은 티베트 귀족사에서 매우 주목하는 가문이다. 이유는 이 가문에서 달라이 라마의 전세영동을 두 명이나 배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문은 시기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분류하는데, 즉 전기(前期)에 해당하는 8대 달라이 라마와 후기(後期)에 해당하는 12대의 달라이 라마의 귀족으로 나누어진다. 이 귀족집안은 티베트 사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막강한 부와 명예를 차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문의 전세영동 출현에 관하여 티베트 지방정부나 다른 귀족가문에서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한 가문에서 전세영동이 두 명이나 출현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이는 티베트 활불제도의 불투명성과 정치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⑤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인 ‘랑돈(朗顿 Glang-mdun)’가문. 13대 달라이 라마의 아버지 공갈인청(工噶仁青)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그리고 오늘날 인도에 망명중인 ⑥제14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 등이다.


이러한 아계귀족 집단의 특징은 기존의 ‘제본’귀족처럼 대대로 세습되어온 집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아이가 전대 달라이 라마의 전세영동(靈童)으로 지정되면서부터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수평에서 수직선상으로 격상된 가정들이다. 종교가 사회를 장악하는 티베트에서 전세영동으로 확인되면 그 집안은 ‘아계’가정으로 분류되고 아울러 그 부모 또한 새로운 환경과 인맥관계를 접하게 된다. 이때 영동의 부모는 원래의 이름대신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된다. 아버지인 경우는 ‘가아(加亚)’라 부르고 어머니의 경우는 ‘가옹(加雍)’이라 한다. 티베트어로 가(加)는 왕의 의미이고 아(亚)는 아버지의 존칭이다. 따라서 ‘가아’는 ‘왕부’의 뜻이 된다. ‘옹(雍)’은 티베트어로 모친의 존칭이다. 따라서 ‘가옹(加雍)’는 왕모의 뜻이 된다. 영동으로 확인된 자신의 아들이 사원에서 정식 활불로 인준 받아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20여년의 종교적 수습기간이 필요하다. 이때 부모들은 티베트 정부로부터 고관의 작위나 대장원의 경제적 기반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 전통이 처음부터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제7대 달라이 라마 재위기간중인 1729년에 청 왕조의 전격적인 실행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청은 7대 달라이 라마의 부친을 ‘보국공(輔國公)’이라는 관직을 하사하였다. 이 관직명은 이후 전세영동으로 승인받은 부친에게 관례적으로 하사되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면 9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은 어떤 관직도 하사받지 못했으며 10대 달라이 라마의 가족은 ‘일등대길(一等台吉)’이라는 비교적 낮은 등급의 관직명을 얻기도 했다. 따라서 ‘아계’라는 귀족집단의 출현은 7대 달라이 라마 재위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티베트사회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또한 티베트에는 5家의 대표적인 ‘제본’가문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가문들이다. ①갈석(噶锡 dGav-bz)가문. 지역에 따라서는 이 가문을 ‘다인(多仁)’이라고도 부른다. ②통(通 Thon), ③타객(朵客 mDo-mkhar), ④파랍(帕拉 pha-lha) ⑤랍가일(拉嘉日Lha-rgya-ri) 등이다. 이 가문들과 더불어 ‘미찰’가문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찰융(擦絨), 하찰(厦扎), 색강(索康), 곽강(霍康), 아패(阿沛)가문 등을 들 수 있다. ‘미찰가문’은 티베트 사회의 귀족 범주에 포함되지만 위에서 서술한 ‘아계가정’과 ‘제본가정’과는 그 성격과 배경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가문들은 대부분 스스로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계층들이다. 이 계층들은 중국 정부가 티베트 흡수시기인 1950년대에도 30여家가 있었다. 그 중 일부의 ‘미찰가정’은 여전히 당시 티베트의 재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하찰(夏)’와 ‘찰융(擦絨)’등과 같은 가문들이다. ‘미찰가정’은 가문의 지속과 사회 권력과의 연계를 위하여 이혼·재혼·데릴사위·양자 등의 다양한 결합 형태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가족 내의 남성계승자 유무를 매우 중요시했다. 남성계승자가 있다면 이 계승자의 직위 상승을 통해서 가문의 사회적 지위 또한 제고할 수 있었다.


상술한 3가지 유형의 가문 중에서 ‘아계가정’은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는 토대로써 혈통을 그다지 주요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이 다른 귀족가문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제본이나 미찰 귀족가문은 가문의 연속성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위해서 가족 내부에서는 ‘혈친전승’을 엄격히 적용하였다. 또한 가족 내에 관료 출신의 남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매우 중시하였기 때문에, 남성의 존재여부는 귀족가정의 발전과 쇠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소였다. 따라서 가문의 가업전승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하여 계층 사이의 구성원 유입이 상당히 탄력적으로 운영되었다. 예를 들면, 가정의 권력과 경제력을 구비하기 위하여 이혼과 재혼은 물론 여러 배우자를 일시에 동반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정구성의 방식에 부합하여 ‘제본가정’에서는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의 혼인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는 티베트 귀족가정의 일반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농노가정에서도 역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혼인형태이다. 이러한 혼인유형을 선택하는 이유는 각 계층마다 다양하지만 귀족가정에서는 정치적인 권력과 경제적인 실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 그 주요 목적이었다.

 

심혁주 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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