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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못 모시면 중죄

어느 커다란 섬에 일정한 수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섬은 목초지가 잘 발달되어 있고 기후가 맞아 목축업을 하기에 적당하고, 그래서 섬에 사는 사람 모두가 목축업을 한다고 하자. 이 때 어떻게 하면 그들 전체가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이는 게임 이론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문제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되도록 많은 동물을 키우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점점 더 많은 동물을 키우게 되면, 섬의 크기가 무한하지 않은 한 목초지가 고갈되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동물이 어느 날 같이 죽게 된다.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이익의 정도가 점점 증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파산에 이르게 된다.

어떤 집단이 있다고 할 때, 개인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을 반드시 보장하지 못한다는 좋은 예가 된다. 또 집단과 집단이 모여 더 큰 집단을 이룰 때, 개별 집단의 이익이 전체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예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전체가 같이 파산을 맞게 된다 하더라도, 개인 각자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령, 혼잡한 사거리에서 앞에 차가 막혀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때 나에게 녹색 신호등이 떨어졌다고 무조건 앞의 차의 뒤꽁무니에 내 차를 댄다면, 가로질러 가는 차의 공간이 막히게 되고 결국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가 가끔 볼 수 있는 출퇴근 시간의 사거리 모습이다.

이 때, 이 사람은 교통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으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섬사람도 자기 가축 자기가 마음대로 키운 것밖에 없지만, 그래서 남에게 아무 피해도 준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못살게 하는 것이 된다.

이는 불교의 계율과도 관계된다. “보살지지경”에 나오는 보살의 네 가지 무거운 죄 가운데에 간석재법 ( 惜財法)이라는 것이 있다. 재물이나 불법을 보시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을 말한다. 재물을 보시하지 않거나 불법을 전하지 않는다고 무슨 형법에 어긋나는 일이야 없을 것이다. 계율을 어겼다고 누가 심판하자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6바라밀을 수행함으로써 안으로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이이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 중죄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을 얼마나 게을리 하고 있는지를 모두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처님을 얼마나 잘못 모시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어린이 포교, 군포교, 유학생 포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포교를 게을리 한다는 것은 곧 계율을 어기는 것이다.

육상에서야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게 뛰면 그만이겠지만, 불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성숙해져야 한다. 부처님은 법당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절을 넓게 짓고 불상을 크게 조성하고 탑을 높이 세우는 것으로 부처님을 잘 모시는 것은 아니다.

설악산 봉정암의 사리탑에는 기단이 없다. 그래서 설악산 전체를 그 기단으로 삼는다. 사리탑 하나가 큰 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듯이, 작은 절을 짓고 조그만 불상을 모시더라도 일체 중생을 포섭하여야 한다. 그것이 수행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일체중생이 불법의 이익을 고루 나누어 가지게 하여야 한다.

소승불교에 비해 대승불교가 수승하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중생을 진정으로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소승이건 대승이건 부처님 모시기를 포기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중생을 모시지 못한다면 부처님 또한 모실 수 없다는 철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양형진 교수(고려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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