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법사품
37. 법사품
  • 법보신문
  • 승인 2012.10.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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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전법사명

법사품은 범어로 ‘dharma bhāṇaka parivartaḥ’인데 ‘dharma’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법을 말하며, ‘bhāṇaka’는 법을 설하는 사람, 혹은 법을 암송하는 사람을 뜻한다. ‘dharma bhāṇaka’를 한역에서는 법사로 번역했다. 그리고 ‘parivartaḥ’는 품을 나타낸다. 그래서 법사품이 된 것이다.

 

법화경 수지·독송의 공덕


법사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약왕보살과 8만의 보살들에게 말씀하시길 ‘어떤 중생이든지 불전(佛前)에서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듣고 잠시라도 기뻐한다면 수기를 주리라’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여래 멸도 후에 어떤 사람이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듣고 잠시라도 기뻐한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수기를 주리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수지, 독송, 해설, 서사하고 부처님을 뵙는 듯이 온갖 물건으로 공양하고 공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이미 큰 원력을 성취하였지만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라 설하신다. 그러면서 고원(高原)의 비유로써 그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래 멸도 후에 법화경을 설할 때 법사의 자세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홍법삼궤(弘法三軌)로 알려져 있다.

 

법사품은 법화경 전법의 자세와 공덕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을 일부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약왕보살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묻기를 ‘어떤 중생이 미래세에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 한다면 응당 이런 사람들이 미래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 왜냐하면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수지 독송 해설 서사하고 경전에 여러 가지로 공양을 올리되, 꽃 향 영락 말향 도향 소향 증개 당번 의복 음악 등으로 공양하고 합장 공경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온 세상에서 공경받되 마치 여래와 같이 공양을 받을 것이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대보살이며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성취하여 중생들 불쌍히 여겨 이 세상에 원력으로 태어나 법화경을 두루 분별하여 연설하는 것이니라. 하물며 이 경을 능히 다 수지하고 여러 가지로 공양하는 사람들이겠는가? 약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이 사람들 스스로 청정한 업보를 버리고, 여래 멸도 후에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악세에 태어나 법화경을 두루 설법한다는 것을! 만약 이 선남자 선여인이 내가 멸도한 후에 능히 몰래 한 사람 위해서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요 여래가 파견하여 여래의 불사를 행하게 함이니라. 하물며 대중 속에서 사람들 위해서 두루 설법함이겠는가?”


이 법사품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전법의 사명이다. 즉 법화경 한 구절이라도 전법한다면 곧 여래의 사자이며, 여래의 불사를 행한 것이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법의 사명을 강조한 배경은 초기경전에 나온 ‘전도선언’이다. 부처님께서 야사와 그 친구들 그리고 야사의 부모등 60명의 아라한과 재가 신자들이 생겨나자 그들에게 전법의 사명을 부여한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해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전도를 떠나되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밀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서 우루벨라로 가리라. ” (잡아함경 제39권)

 

전법사명 부여하는 부처님


법화경 법사품의 전법자세나 전법의 사명과 초기경전인 아함경 전도선언의 정신이 서로 그 맥이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성 스님

인류사의 수많은 전쟁들이 종교전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현재도 이슬람을 모독하는 어느 나라의 동영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남을 무시하고 자신의 종교만을 전파하기 위해서 물불을 안 가린다면 인류는 오히려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전도선언이나 법화경의 전법은 ‘인류의 평화’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부처님법을 전하라는 당부가 그 중심에 있음을 새겨야 하지 않을까!


법성 스님  법화경 연구원장 freewheely@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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