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남 스님의 기도
혜남 스님의 기도
  • 송지희 기자
  • 승인 2012.10.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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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 기슭에 자리한 천안 상원사로 가는 길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좁은 산길 주위로 펼쳐진 작은 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주위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며 늘어선 건물들은 얼핏 보기에도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듯 낡은 모양새다. 꽤 오래전 들어선 개신교계 집단기도마을이라고 했다. 산세가 좋으니 그럴만하다 싶으면서도 영 뒤가 찜찜하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도통 생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스레 개운치 않은 마음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해 상원사에 당도했다.


상원사는 산길 끝에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은 만큼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도량이었다. 주지 혜남 스님에게 도량에 대한 감탄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스님은 10년전엔 오랜 세월 방치돼 엉망이었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전 주지들이 3년을 못 버티고 도량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다. 산신각에 기도하러 40~50년 이곳을 참배했다는 신도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주지만 18명이 바뀌었다고 했다. 처음 스님은 영문을 몰랐다. 해발이 높고 청정한 기운이 맴돌아 수행도량으로 부족함이 없는데 왜 스님들은 이곳을 떠나갔을까.


이유를 알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날 새벽 목탁을 치며 예불을 드리는데 문득 소름이 돋았다. 뒤를 보니 대여섯명이 법당 문 앞에 서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산 아래 기도촌 사람들이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느 날엔 도구를 가지고 올라와 법당 기둥을 훼손했고, 산신각을 돌고 내려오면 밥통의 밥이 마당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공양물을 훔쳐가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사태에 두려움이 먼저 일었다. 그러나 떠나야겠다는 생각보다 부처님 도량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수행처를 3년 이상 머물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10년을 내다봤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용맹정진. 하루 몇시간이고 법당에서 정진했다. 신도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불사도 시작했다. 법당을 정돈하고 단청을 새로 했다. 썩고 낡은 기둥과 전각도 다시 손봤다. 세월의 풍파 속에 태고종 사찰로 잘못 등록돼 있는 오류를 바로잡고 ‘상원사’라는 새 이름도 붙였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샌가 기도촌 사람들은 더 이상 도량에 나타나지 않았다. 법당도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내년 2월, 어느덧 스님은 10년 기도를 회향한다.

 

▲송지희 기자

혜남 스님은 “이 모든 것이 기도의 힘”이라고 했다. 원력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도 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방치돼 적막했던 도량, 한 스님의 순수한 원력과 기도가 이곳을 청정도량으로 변화시켰다. 스님의 맑은 미소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새삼 기도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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