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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여자가 계를 받을 수 없었던 시절. 젊은 여인 낀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남장을 한 채 남편과 가족을 떠나 수행승으로 살기 시작했다. 절에서 더없이 기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참으로 기막히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됐다. 한 여인이 자신이 잉태한 아기 아버지로 낀을 지목한 것이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낀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두 갈래 갈림길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세상의 질타와 모진 처벌을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밝히고 결백을 증명하는 대신 수행자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나를 모함하고 아프게 하면서 평생을 힘들게 한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나아가 그 사람의 잘못과 그 잘못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을 모두 잊을 수 있을까. 여자의 인생을 버리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행자로 평생을 살아간 베트남의 남장 보살 낀은 자신에게 잘못한 이들을 이해했고, 용서했고, 사랑했다. 진실한 수행을 통해 모든 것을 바르게 볼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된 그녀는 진정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 ‘화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등 수많은 수필집과 명상집으로 사람들에게 힐링 메시지를 전해온 틱낫한 스님이 첫 번째 소설 ‘행자’를 통해 타인의 잘못을 내 마음속에서 비워내는 것, 잊어버리는 것, 잊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해이고 용서이자 참된 사랑임을 전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첫 번째 소설 ‘행자’에 등장하는 낀은 베트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들어온 티낀이다. 티낀은 실제 베트남에서 살았던 여인으로 무한한 용서와 끝없는 인내심을 대표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그래서 베트남 부모들은 아이가 강하게 인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마음속에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참된 평화를 찾았던 이 남장 보살의 전설을 우아하고 담담한 문체로 소설화 했다. 여기서 스님은 자신의 마음속에 집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면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젖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음을 일러준다. 일상의 삶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속의 집으로 돌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힐링소설’이기도 하다. 1만1000원.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