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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호거산 운문사 순례

기자명 법보신문

울긋불긋 단풍 속 순례단
그대로 자연과 어우러져


운문사 둘러싼 ‘삼수갑산’
바람과 돌로 법문을 하네

 

남도 천리 청도 호거산 운문사 산문입구로 들어가는 길,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나무, 천지사방 주렁주렁 매달린 연분홍빛 감들은 삼수갑산에 한 폭 아름다운 수(繡)를 놓고 있었다. 나만의 착각일까? 마치 절정의 가을이 나와 우리 보현행원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108산사순례’를 떠나지 않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가을의 향기와 향취가 산자락 곳곳마다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이 절을 품었는지 절이 산을 품었는지 모를 산사의 풍경들이 발목을 한껏 끌어 당겼다. 그 어떤 말과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운문사의 가을이 한폭 풍경화처럼 우리 앞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잠시 기도조차 잊은 듯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 소나무인 반송(盤松)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운문사는 한국제일의 비구니 승가답게 웅장하면서도 단아하게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와 주지 일진 스님은 부처님의 향로를 들고 대웅보전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내딛자 어디선가 법륜이 구르는 듯 맑은 새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비구니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처럼 맑고 고왔다. 청정무구 그 자체였다. 회원들은 곧 자리를 잡고 천수경 독경과 사경, 나를 찾는 시간인 입정에 들어갔다. 눈을 지긋하게 감고 두 손을 합장하자, 호거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가볍게 귓가에 와 닿았다. 그 바람소리는 내겐 “그대들은 마침 운문사에 잘 왔다”는 부처님의 법어로 들렸다. 운문사의 바람소리, 나무와 전각은 물론 수각(水閣)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그윽한 법어였던 것이다.


108참회문을 읽으며 곧 기도에 들어갔다.“일심으로 정진하여 부처님의 가피가 상서로운 빛처럼 사바에 비추기를 기도하겠나이다. 내 이웃이 모두 안락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우리나라가 나날이 화합 발전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온 세계가 다투지 않고 평화롭기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이 세상 유정무정 모든 삼라만상이 평온하기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정말 그렇고, 정말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 더 나아가 이 세상의 유정무정의 삼라만상의 평화를 기원했기 때문에 일흔 두 번의 기나긴 순례를 하는 동안 부처님께서는 일심으로 기도하는 나와 보현행원들에게 일심광명 무지개를 가피로서 환하게 보여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우리 회원들은 그 무지개를 볼 때마다 환희심이 일어났다. 그 가피가 우리가 지금껏 무사히 회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원력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기도에 의해 원력도 세워진다.
대강백으로 널리 알려지신 일진 스님의 감로법문이 이어졌다. “‘자경문’에 보면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 이라는 최고의 경구가 있습니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108산사순례는 3일간 법회를 하니 천년의 보배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시도 인연이 닿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성지란 따로 있는 곳이 아닙니다. 108산사순례 기도회의 발길이 닿는 그곳이 곧 성지입니다.”

 

▲선묵 혜자 스님

돌아오는 길 농촌사랑 장터에 들렀다. 햇살고운 가을이 길마다 넘쳐나듯 씨 없는 감인 반시와 대추, 사과, 버섯 등 많은 특산물이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즐거운 순례 길이었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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