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자, 사찰세미나 그리고 경허 스님
불교학자, 사찰세미나 그리고 경허 스님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2.11.23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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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문중 주관 세미나 한해 20여건
근현대 불교사 연구 활성화 이끌어
학문 자율성 훼손 우려도 더욱 커져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름 짓는 불교학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학술세미나의 급증이다. 1990년대 말까지도 불교 주제 학술대회는 기껏해야 20여회 안팎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즘은 크고 작은 불교 세미나가 한 해 100여회 이상 열린다. 2000년대 초입 불교학연구회를 비롯해 많은 학회들이 속속 창립된 이유가 크겠지만 사찰에서 주관하는 세미나가 부쩍 는 것도 한 요인이다. 벌써 올해만도 사찰이나 문중과 관련해 열린 세미나가 20회가 훌쩍 넘는다.

이렇듯 사찰 세미나가 활발해진 배경에는 사찰의 뿌리 찾기와 인물 선양이 있다. 불교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해당 사찰과 인연이 깊은 고승의 사상 및 행적을 조명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찰 구성원들로 하여금 유대감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며, 사찰의 정체성 모색 및 방향설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불교학의 대중화나 현실참여라는 점에서 학자들의 사찰 세미나 참여도 충분히 의미 있다. 한국불교사의 ‘사각지대’라는 근현대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나, (주로 교수들의 무대이지만) 일부 소장학자들의 궁핍한 생활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도 사찰세미나의 미덕이다.

그렇더라도 역기능이 아예 없지는 않다. 일관된 주제의 연구가 어렵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사찰 세미나 특성상 자신의 학문적 관심에서 비롯된 연구라기보다 의뢰 받은 주제를 연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연구가 산발적으로 이뤄지거나 자신의 전공과 동떨어진 논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근래 불교학자들의 저술을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더라도 특정 주제에 천착했다기보다 논문 모음집 형태가 많은 것도 이러한 사찰세미나 영향이 없지는 않을 듯싶다.

학문의 객관성 유지가 쉽지 않고 비판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도 사찰 세미나의 역기능 중 하나다. 애써 자신을 불러준 곳에 가서 해당 인물에 대해 쓴 소리하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사상과 행적에 흠결이 있더라도 묵과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사례들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 ‘맞춤형 논문’ ‘주문생산 논문’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1월21일 열린 경허 스님 열반 100주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일부 논문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지난 9월 경허 스님의 주색(酒色)을 비판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해당 사찰과 문도들의 반발로 논문이 실린 학술잡지가 폐간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일부 학자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개최 날짜도 10월10일에서 11월21일로 옮겨졌다. 논문을 쓴 당사자도 감정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비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객관적인 비판이 많지는 않았다. 경허 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를 준비해온 사찰과 문중 스님들의 실망이나 아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학자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학자는 경허 스님 계율관 비판의 근거가 됐던 자료가 일제강점기 사상개조에 목멘 (권상로, 김태흡, 이능화 등) 친일파들에 의해서라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경허 스님의 기행에 대한 지적은 한암 스님, 청담 스님에 의해서도 제기됐다. 정휴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 씨가 친일작가라 경허 스님의 행적을 다룬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 ‘길 없는 길’을 썼을 리는 없다. 무엇보다 1981년 덕숭총림 스님들이 참여해 편찬한 ‘경허법어’에 술이나 여자문제가 포함된 일화 38편이 소개돼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깨달음이나 사상을 떠나 계율관에 있어서는 경허 스님이 아니라 부처님을 따라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바른생활인은 (독재)체제가 설정한 허구적 사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올바른 사표의 모습, 특히 선(禪)의 사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반론도 궁색하게 받아들여지기는 마찬가지다.

사찰 세미나가 크게 활성화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불교학의 자율성과 고승 선양의 참뜻도 꼼꼼히 되짚어봐야 한다. 불교학자가 이해관계에 휩싸인다면 학문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불교학도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 사찰이나 문중이 의도에 부합하는 연구를 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자유로워할 학문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는 선양사업이 오히려 허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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