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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산사에 장이선 까닭

기자명 법보신문

새벽부터 순례 나선
불자들 농산물 구입


어려운 농촌 돕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돼


2007년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108산사순례기도회’의 활동이 방영된 후 ‘산사에서 장이 선 까닭’이란 말이 회자되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농촌경제는 외국의 수입 농산물이 크게 늘어나면서 매우 어려울 때였다. 사실 내가 ‘108산사순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농산물직거래장터를 열 생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일깨워 준 것은 몇몇 우리 회원들 덕분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천여명의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는 터라 안전을 위해서는 인원점검이 필수였는데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인원을 점검할 때 마다 꼭 몇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찾아보면 그 분들은 사찰 앞에서 몇 몇의 농부들이 파는 농산물 앞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니 개인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 다가갔더니 회원들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스님! 저희들은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왔습니다. 고사리, 장아찌, 더덕들을 보세요. 이곳에 있는 것들은 서울에서 참으로 구경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그러니 이곳의 식품을 사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그도 그럴 것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 먼 곳까지 순례를 왔는데 그냥 맨손으로 집으로 돌아가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회원들은 이런 반찬거리나 그 지역의 특산물인 과일들을 사들고 집에 가서 남편과 자식들에게 내 놓으니 “참 맛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속담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는 기회에 하고자 하는 일을 마저 해버린다’는 뜻이다. 나는 이 속담이 머릿속을 퍼뜩 스쳐 지나갔다. 그렇구나. 스님으로 한 평생 살아온 내가 어떻게 살림을 하는 보살님들의 생각을 따라 갈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곰곰이 생각했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단순히 기도만 하는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사회를 위해 선행(善行)을 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즉시 농협중앙회에 전화를 걸었다. 108산사순례의 취지를 알리고 우리 회원들이 그 지역의 농산물을 살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농협중앙회에서도 도시와 농촌 교류 활성화와 농업인 실익 증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오래전부터 ‘농촌사랑’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게 환영했다.


그 때부터 108산사를 찾아 108불공으로 108배를 하며 108번뇌소멸하고 108자비나눔으로 108공덕을 쌓으며 108염주를 만들어 인연공덕 쌓아가는 많은 일 중 ‘농촌사랑 직거래장터’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직거래 장터에서 파는 물건 중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고등어, 젓갈 등도 있었다. 절에서는 육류를 파는 것은 알다시피 금지 품목이다. 그러나 우리의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홍보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각 사찰은 고등어 젓갈 그리고,육류마저 절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던 것이다.


요즘, FTA로 인해 수입 농산물이 늘어나면서 농촌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농민들의 근심걱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108산사순례회원들이 지역 농민들에게 웃음꽃을 안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선묵 혜자 스님

애초 우리들의 순례는 불심을 키우기 위해 시작된 순례였다. 그러나 모처럼 지방 나들이를 온 회원들이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싱싱한 지역 특산물을 찾는 모습과 농민들의 함박웃음을 보면 나는 한없이 즐거워진다. 농협의 집계에 의하면 그동안 산사순례직거래 장터에서 판매된 지역 농산물 판매 금액은 2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듯 산사에서 장이 선 것은 도농화합의 퍼포먼스이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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