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욕계의 존재방식
4. 욕계의 존재방식
  • 법보신문
  • 승인 2013.03.04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에서 ‘욕계’란
감정적 세계 아니라
자연의 실상인 실법
욕심과는 전혀 달라

 

불교는 본디 신앙적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그 근본이 신앙적이다. 한국에는 기독교 세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종교가 곧 신앙적인 요소를 바로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불교는 신앙적인 요소를 거의 머금고 있지 않다. 다만 수행적인 요소를 주류로 하고 거기다가 약간의 신앙적인 냄새를 띠고 있을 뿐이겠다. 불교를 기복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이 하느님처럼 여겨지고 있을 것 같다. 기복적인 불교가 종교적으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모든 종교는 다 기복적인 요인을 함유하고 있고, 그 요인을 무시하고는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생활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과 하느님과의 차이는 전자가 이 우주를 필연의 법으로 생각하는데 비해 후자는 이 우주를 오로지 인격적인 차원으로만 여기는 것에 비유됨직하다. 이 우주를 인격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우주를 오로지 인간의 지성과 의지로서만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우리가 이 우주를 그런 인격의 요인으로 해석한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비인격적 요인들은 별로 존재가치를 머금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오로지 인간만이 의지와 사유를 행사하기에 이 우주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 양 여기게 된다.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과 광물이 모두 인간에게 복속되는 인간의 부속물인 양 여기는 것은 인간이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고 여기는 황당한 착각과 비슷하다 하겠다.


달을 무척 사랑했던 어느 미국 우주과학자가 죽어서 그 시체를 달에 연착륙시켰던 일화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광대한 이 우주의 크기에서 인간의 힘을 생각하면 참으로 먼지처럼 미세해서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이 광대한 우주가 인격적인 차원으로만 간주된다면 그것은 너무도 황당하고 어설픈 인간중심주의로 생각되어질 수밖에 없겠다.


우주를 인격적으로만 여기는 발상은 참으로 가소롭다고 여겨진다. 삼라만상을 인격적인 것으로 해석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삼라만상은 인격적인 것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삼라만상이 마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격적인 것은 두뇌적인 생각과 가슴의 의지를 나누어 갖춘 이원적인 구조를 객관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마음은 생각과 가슴이 별개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의 원초적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라려는 식물의 마음은 느끼려는 동물의 마음과 아주 다른 것처럼 여겨지나, 자연적 물질의 보존하려는 마음이 식물적으로 자라거나 또는 동물적으로 느끼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운동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자연은 원초적으로 어떤 욕망을 안고 있는 성향이다. 광물적인 존재도 식물이나 동물처럼 자라는 욕망이나 느끼는 욕망처럼 구체적인 물질화의 길을 간 것은 아니지만, 잠자는 욕망의 덩어리를 안으로 만 안으로 만 다져놓은 상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청마 유치환의 시 ‘바위’는 오랜 ‘비정(非情)의 함묵(緘)’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한 물질의 자기 욕망을 노래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법은 세상을 욕망으로 읽으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욕망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욕망은 욕심처럼 소유하려는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다. 욕망은 물질의 존재하는 법이요, 성향을 말한다. 욕심은 소유욕처럼 인간의 주관적 감정을 말하나, 욕망은 이 우주의 존재방식으로서 파도처럼 모든 얽힘장식을 뜻한다.

 

▲김형효 교수

한국 불교계는 욕망을 너무 지나치게 주관적 감정으로만 읽는 폐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삼계의 욕계는 감정적인 세계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의 사실로서의 실상을 알려주기 위한 실법일 뿐이다. 우리는 불법의 도를 철학적으로 깊이 사유하는 법을 익혀야 하겠다. 철학은 알음알이의 지식자랑이 아니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