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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본 조선의 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지난 1월, 대만에서 길거리 일식에 탈이 난 적이 있다. 뜬금없이 문득 하멜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어떻게 견뎠을까, 쌀과 소금에 약간의 푸성귀로, 13년의 세월을?” 묘한 동병상련이었다. 티켓을 끊어 남쪽 타이난(臺南)을 들렀다. 하멜은 바타비아에서 출발, 이곳에 신임 총독을 내려주고 나가사키로 짐을 싣고 떠났다가 조난을 당했다. 질란디아 성채에 하멜의 흔적은 없었다. 단 하나, 역대 총독의 리스트가 한 장 있었는데. 거기 “1653년 코르넬리스 케자르”가 있었다. 나는 낮게 탄식했다. “저 사람이구나….”


하멜 표류기에는, 놀라지 마시라, 불교 얘기도 상당량 있다. 1656년 한양에서 이송되어 강진의 전라병영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근처 수인사를 주로 드나들었다. “우리는 승려들과 아주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들은 매우 너그러웠으며, 특히 이국의 풍습과 생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밤을 새워 가며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습니다.” 스님들은 늘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격려를 했던 듯하다. 약자를 보살피고, 보시를 행하는 것은 불교의 유구한 덕목이다. 거기다 개방적 자세라니…. 당시 백성들은 이방의 무리를 무슨 ‘서커스 구경’ 할 뿐이었다.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노란 머리카락을 보니, 사람은 아니고, 무슨 물 속 귀신인가?”에서 시작해서, 우뚝한 코가 걱정이었던지, “밥을 먹을 때는 코를 귀 뒤로 제쳐 놓고 먹는다네….” 이덕무는 그들이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눈다”고 ‘단정적으로(?)’ 적어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야만인들에게 부러운 점이 딱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흰 살결이었다.


표류기는 17세기 조선의 불교 문화에 대해 4쪽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사찰이 즐비하고,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나, 머리를 깎고, 육식과 남녀를 금한다는 것은 익히 아는 이야기이고, “생활은 노동, 교역, 구걸로 해 나가고, 절간은 기부금으로 건축된다”는 것도 듣던 그대로이다.


1) 공물과 노역의 부담 때문에, 승려들의 “처지가 머슴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2) 사찰은 ‘귀족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승려들도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이러저러 해서 사찰은 “절이라기보다 창가, 혹은 선술집 분위기를 풍긴다”고 적었다.


비관적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3) “지위가 높은 승려들은 그들의 학식으로 하여 존경을 받았고,” 행차할 때는 “의전과 권위가 굉장했다.” 4)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제적 관계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천상 장사꾼이지, “아이들이 갖고 온 물건은 스승이 차지”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스승이 죽으면 멀리 떠났던 제자들까지 찾아와서, 상복을 입고 상을 치르는” 것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주지는 고을 원이 임명했고, 승려들은 ‘약간의 급료’를 받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승려가 되는 것도 그리고 그만두는 것도 자유로웠다는 것! 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가령 1) 승직 임명을 위원회 등, ‘밖에서’ 하면? 그리고 2) 승려들에게 일정한 급료를 제공하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 무엇보다 3) 산문을 오고 감에 나이나 자격의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하면 썩 괜찮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한형조 교수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학습의 기풍이었다. 하멜은 사찰의 교육 풍경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각 사원에는 시니어 승려들이 많은 사내아이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글 가르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 조선의 불교 전통이 퇴락했다 하는가. 하멜의 기록을 읽으며 당시의 풍경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다. 그러면서 아쉽다. “좀 더 상세히 적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스님들이 이방의 종교에 더 깊이 들어갔다면, 그럼,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이 좀 더 일찍 본격화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idi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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