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난향이 천리 간다면 나눔의 자비향은 만리를 갑니다

외사촌 심장마비 죽음 직시 후
‘무상’ 인식하며 통도사로 출가
혼란 속에 조계사 주지로 부임
참회기도 정진 속 불심 하나로


대중에 합장하며 ‘당신이 부처님’
‘친절·행복한 조계사’ 키워드가
한국불교 1번지의 비약 원동력


채움 아닌 비움의 청정도량 지향
승용차 없는 조계사 임기 내 희망
성찰과 나눔의 전법도량 만들 것

 

 

▲도문 스님.

 


만물을 소생시키는 3월의 빛이 한껏 들어서인지 도량 내 전각도 어느새 제 윤각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대웅전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의 걸음도 차분하지만 힘차 보인다. 새소리까지 더하니 ‘기운생동 조계사’ 그 자체다.


조계사는 늘 그러했다. 한국불교 1번지답게, 조계종 제1교구본사의 위상에 걸맞게, 몇 번의 종단 분규가 있어도 이에 휩쓸리지 않고 항상 제 품격을 지켜왔다. 굳이 짚자면, 딱 한 번 지난 해 ‘승풍실추 사건’ 여파로 잠시나마 흔들렸다. 미진(微震)이었지만 간과하면 종단 안팎에서 밀려 온 ‘비난 임계점’을 견디지 못해 큰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중심에 서야 했다. ‘사회적 지탄’마저도 선두에 서서 온 몸으로 받아 내고, ‘분루’를 삼키며 앞으로 나가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 짐은 현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이 지었다. 무거운 짐이었다. 내려놓을 수도, 내려놓아서도 안 되는 짐이었으니 그 무게는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터. 도문 스님은 이 일을 자신의 ‘업(業)’이라 보았다.


도문 스님은 어려서부터 절집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 출가한 외삼촌이 사찰 주지 소임을 보았기에 늘 짬이 나면 삼촌 절에 머무르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방학 당시, 외사촌 형과 함께 그 산사에 머물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즈넉한 저녁 산사 정취를 만끽하며 형과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항상 활기차게 산사 아침을 맞이했던 형이 자신의 인기척에도 꿈쩍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에 놀란 가슴을 쓸며 형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뛰지 않는 심장 위엔 정적만 감돌았다.


‘죽음’을 지켜 본 충격, 형에 대한 그리움, 상반된 감정이었지만 스님 가슴 속에서는 서서히 하나로 귀결됐다. ‘무상!’ 그리고 이내 스스로 되뇌었다. 홀로 사촌 형의 죽음을 직시해야만 했던 이 일, ‘내 업’이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성파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계사 주지 소임을 맡는 일 역시 ‘자신의 업’이라 본 도문 스님은 새벽과 저녁이면 어김없이 부처님 앞에 엎드려 참회했다. 새털 무게만큼의 ‘업’이라도 거두고자 시작했을 터였다. 얼마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계사 일이 어디 주지 스님만의 일’이냐며 함께 기도하겠다는 불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부대중이 참회정진 한다면 지금의 고난은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6월 초, ‘33일 관음기도’를 입재했다. 예년에 비해 일찍 다가 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법당은 꽉 들어찼다.

 

이어진 조계사 관음성지 조성불사를 위한 3000배 용맹정진에도 불자들의 대 호응이 이어졌다. 전 주지 토진 스님이 시작한 ‘함평 국화축제’도 성황리에 이뤄졌다. 11월, ‘주지 스님과 함께하는 42수 진언 관음기도’ 동참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최근 회향한 동안거 방생법회에 동참한 불자는 4700여 명에 이르렀다. 조계사가 제 자리를 찾은 것은 물론 비상의 나래마저 펼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계사 불자님들의 기도에 부처님 가피가 내린 덕입니다. 관음전 건립, 어린이 전용 법당을 비롯한 도량 정비 불사도 제 속도에 맞춰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계사 전각 현황을 고려 할 때 관음전 건립은 참으로 중요한 불사라고 봅니다. 기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대웅전에 한정돼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협소의 불편함’을 끼쳐드리는 것 같은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관음전이 마련되면 공간 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보고 있어 기대가 큽니다. 어린이를 위한 법당 건립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마음을 다해 ‘천진불’을 모셔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일은 전 주지 토진 스님께서 시작하신 불사입니다. 저는 회향할 수 있도록 거들 뿐입니다.”


봄이지만 벌써 가을 함평국화 축제가 눈에 어른거리는 듯 환한 미소를 보인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간다 하는데 ‘난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 합니다. 난이 간직한 ‘선비적 품성’을 드러낸 말이겠지요. 저는 조계사 함평국화 축제를 통해 날아가는 국화향은 만리를 간다고 봅니다. 올해는 조계사 주변뿐 아니라 인사동 거리까지 확대해 보려 합니다.”


조계사 함평국화 축제는 단순한 가을 ‘꽃 축제’가 아니다. 함평군과 조계사가 연대해 진행하는 이 행사에서의 핵심은 ‘나눔’이다. 함평군의 농산물을 직거래 하며 도농간의 상생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구촌 빈곤 아동 돕기 행사도 함께 열린다. 지난해 ‘꽃이 되어요’ 음악회에서 조성된 기금은 로터스월드를 통해 전 세계 빈곤 아동 돕는 일에 사용됐다. 농촌, 불우 이웃, 아동 빈곤 퇴치 등의 다양한 나눔을 기반으로 한 축제이기에 ‘국화향기 나눔전’이다. ‘조계사 국화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도문 스님의 뜻은 여기에 있다.


‘나눔’은 수행의 으뜸이라는 게 도문 스님의 ‘철학’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 남과 함께 기꺼이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에겐 향기가 납니다. 수양과 수행을 겸비한 사람에게서 ‘말 없는 향기’가 배어 나오는 건 항상 자신을 반조하며 부처님께서 보이신 자비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조계사 주지 스님이 직접 쓴 ‘불향’과 ‘복'.

도문 스님은 미국의 저명학자 로날드 잉글하트의 ‘조용한 혁명’이 주는 의미 하나를 전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 과정을 잉글하트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소비와 육체적 안전에 대한 압도적인 강조로부터 생활의 질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이행되는 변화과정을 ‘조용한 혁명’이라 했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에서 대중들의 관심은 단순한 성장, 안정, 일 등의 물질적 가치로부터 문화, 여가, 자아실현, 환경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경제, 육체적 안전이 보장되면 사랑과 존경에의 욕구가 뚜렷해지고, 그 다음 지적 만족은 물론 심미적 만족을 일으킨다고 본다. 우리 사회도 그 변화의 중심점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이 무엇에 의해 만족하는가에 관한 철학적 고찰은 오래 됐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만족할 것’이라는 가설은 이미 무너졌다는 겁니다. 복지 수준이 향상된 구미 국가의 경우 물질적 복지혜택을 누렸지만 불만 또한 급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의 ‘복지’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착 중이다. 통상적인 경제지표는 물론 주관적 행복도 가늠해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 경제, 예술, 종교 분야에서 이른 바 ‘성공’ 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감동을 주는 사람’도 그만큼 많으냐는 질문에 속 시원히 ‘그렇다’고 답변 할 수 있습니까? ‘아니다’라 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 루트는 다양할 겁니다. 한 사람의 인생 역경사, 부조리 앞에 당당히 맞섰던 ‘투쟁사’도 분명 의미가 있기에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나누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봅니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분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일까? 도문 스님은 조계사 대중들과 함께 지난해부터 ‘조용한 캠페인’을 펼쳐 왔다. 올해 초 대중들에게 나눠 준 ‘부적(?)’ 두 장에서 엿볼 수 있다. ‘福(복)- 날마다 좋은 날’, ‘佛香(불향)’ 이 글씨를 수일 동안 밤을 새다시피 하며 직접 썼다. 만리 가는 국향에 비하면 불향은 온 우주 법계로 퍼질 터. 그 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일상은 ‘날마다 좋은 날’일 것임은 자명하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겉봉투 즉 조계사 전용 봉투에 새겨져 있다.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나’ 이전에 ‘상대’를 부처님으로 모시겠다는 의미가 배어 있다. 상대를 부처님으로 보는 사람이야 말로 또한 부처님 아니겠는가. 자연스럽게 조계사를 찾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행복감에 젖어 들 터.

 

 

▲조계사를 좀 더 비워 ‘승용차 없는 도심 속 산사’를 조성하는 게 꿈이다.

 


도문 스님이 솔선수범했다. 이른 아침 일주문에 나아가 조계사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에게 합장을 올렸다. 불자 대중도 처음엔 의아해 했지만 점차 스님의 ‘진심’을 간파하며 합장으로 화답했다. ‘친절한 조계사, 행복한 조계사’는 이내 사부대중 가슴에 자리했다.


도문 스님은 작은 바람 하나가 있다고 한다. 주지 이취임식이다. 거창한 이취임이 아니다. 조계사 대중의 마음도 헤아려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혹 요식행위라는 ‘핀잔’을 들어도 꼭 하겠다고 한다. “직영사찰이다 보니 조계사 주지는 갑자기 떠나는 일이 다반입니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게 ‘스님 일’이니 걸릴 건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그 와중에 ‘허무감’마저 느낀다고 합니다.”


일리 있다. 단 몇 년이라도 주지 스님을 중심으로 동고동락 정진하며 모든 불사를 해왔는데, 어느 날 뜬금 없이 떠난다면 의지했던 ‘태산’이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일 것이다. 새 주지 스님과의 인연은 그 다음 일 아닌가.


“조계사 종무원과 신도회, 전 주지가 일주문 앞에서 새 주지 스님을 맞이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대웅전에 모두 모여 부처님 앞에서 ‘오고 감’을 고한 후, 전 주지는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겁니다. 고마움과 당부가 부처님과 대중 앞에서 일시에 이뤄지니 대중화합에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임기 중에 꼭 하나 이루고 싶은 불사 하나가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관음전 외에 어떤 전각을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조계사를 좀 더 비우고 싶습니다. 조계사 대중과 논의해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가능하다면 ‘승용차 없는 도심 속 산사’를 가꿔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워진 도량에서 청정심 한 자락 느낄 수 있어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계사 성장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주지 일’이라 강조했다. “조계사 성장의 원동력은 조계사를 찾는 대중의 마음입니다. 그 대중의 심금을 울려 감동을 전하는 조계사가 되도록 저와 종무원, 신도님들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조계사 비상의 원동력은 분명 조계사를 찾는 사부대중이다. 하지만, 그 원동력을 찾아내고 일으킨 주인공은 주지 도문 스님 아닌가. 스님의 진솔함과 담대함이 아니었다면 조계사의 비상은 아직도 기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계사 격동의 역사를 지켜 본 회화나무와 백송이 봄 바람에 의지해 청량한 소리 한 자락을 선사하고 있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문 스님
1980년 사미계를 수지한 스님은 한참 후인 1997년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지킬 자신이 없었기’에 수계를 미뤘다고 한다. 1983년 통도사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조계종 제13·14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조계사 부주지와 총무원 재무부장을 역임 한 후 2012년 5월부터 조계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