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선수행 강영미씨

기자명 법보신문

지나온 삶 되돌아보니
후회·안타까움만 남아
참선접하고 새삶 찾아
10안거 원만회향 발원

 

▲일심법·54

마흔 아홉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정초부터 급성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았고, 실밥도 빼지 못한 채 무리를 한 탓에 설을 앞두고 심한 방광염으로 며칠을 드러누웠다. 제사도 지내지 못하고 새해를 맞았다. 병상에 누워 생각하니 결혼하고 20년 세월, 뭐가 그렇게도 바빴던지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허탈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아들 둘이 부산 남산중학교를 나온 탓에 안국선원을 짓고 있을 때부터 무수히 그 앞을 지나다녔건만, 인연이 없었던지 법당 참배조차 하지 않고 지나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심자실로 들어가게 됐고, 그 속에서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짧은 시간에 몸 안의 물이 다 마를 정도의 눈물을 쏟아내고서야, 초심자 방을 나올 수 있었다. 벚꽃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던 그 봄날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25년이 넘는 시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쏟아내었던 엄청난 말의 가시들이 오히려 내 몸에 소나기처럼 박히던 그 아픔을 몇 줄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평생을 풀어내야 할 숙제 하나를 품고 시작한 첫 번째 안거, 그 안거가 끝나기도 전에 오른팔 주관절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해제를 맞았고, 두 번째 안거 중에 재수술에 들어가 역시 병원에서 해제를 맞았다. 퇴원을 했지만 합장이 되지 않던 팔의 상태는 심각했고, 그 후유증은 1년이 넘도록 모든 생활에 지장을 주었다.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이 처절하도록 가슴에 와 닿았다. 두 번에 걸친 수술과 회복 기간에 문득 마음속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럼에도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열 번의 안거를 채우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세 번째와 네 번째 안거 때는 작은 아들이 연이어 폐 기흉 수술로 대학 진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 다섯 번째 안거 중에는 ‘치아신경통’이란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으로 거의 2주일을 물도 제대로 못 마시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공부하기 전이었다면 아마도 바깥을 향해서 원망하고 억울해 하는데 급급했겠지만, 모든 것을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하니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여유까지 생겼다. 마음의 키가 훌쩍 자라면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여유가 생겼고,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필요한 감정의 묵은 퇴적층을 캐내는 작업을 하면서 빈 공간이 생기는 만큼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거가 거듭되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사소한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졌으며,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50년 넘는 세월, 길들여진 습(習)을 바꾸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진하는 시간에는 묵은 심층의 찌꺼기들, 아마도 쥐라기나 백악기에 형성된 석탄층만큼이나 견고한 그것들을 있는 힘껏 캐내어 버리는 작업을 했지만, 일상생활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이 이전의 습관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내 마음의 찌꺼기들을 다 캐내어 버리고 그 빈 공간에서 텅 빈 충만을 느끼는 그날이, 완전한 자유로움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그날이 내게도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