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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강한 노학자 학문열정

  • 교학
  • 입력 2013.04.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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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
전립선암투병 견뎌내며
‘역주 석보상절 21’ 펴내
제자 김성주 교수도 참여

 

▲김영배 교수는 지난 40여년 간 ‘석보상절’ 등 역주작업을 통해 일반인들이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있는 옛 문헌에 접근토록 노력해왔다.

유능한 학자라도 강단을 떠나면 학문까지 멀어지고는 한다. 하물며 병고까지 겹친다면야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외가 없지는 않다. 김영배(83) 동국대 명예교수 경우가 꼭 그렇다.


김 교수는 최근 ‘석보상절 제21’에 상세한 역주를 달고 출처까지 밝힌 ‘역주 석보상절 제21’(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간)을 펴냈다. 15~16세기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불교경전에 대한 해박함, 여기에 학문적인 성실함까지 고루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1972년 ‘석보상절 제23·24주해’(일조각)를 펴낸 것을 시작으로 김 교수는 그동안 ‘역주 석보상절 제6·9·11’ ‘역주 석보상절 제13·19’ 등 ‘석보상절’ 역주작업을 계속해왔다.


‘석보상절’은 수양대군이 부왕인 세종의 명을 받아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민중을 불교에 귀의토록 하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부처님의 가계와 일대기가 기록된 24권의 활자본 책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언어학적으로나 역사적·문화적·종교적으로도 가치가 대단히 크다. 그럼에도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것을 읽고 이해하기란 녹록치 않았다.


이런 가운데 김 교수의 ‘역주 석보상절’은 중세 언어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자상한 안내서다. 현대어로 내용을 풀이하고 주석까지 곁들여 상세히 해설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역주본은 1990년 발견돼 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초간본을 저간본으로 삼았다. 원문과 현대문을 실었으며, ‘석보상절’의 내용과 비교할 수 있는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원문도 함께 게재했다. 다만 소장처인 리움이 영인본 제공을 거부함에 따라 부득이 원전 모습 그대로를 복원하기 위해 동국정운식 표기와 방점을 똑같이 살려 표기해야 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역주 능엄경언해’ ‘역주 월인석보’ ‘역주 법화경언해’ ‘역주 금강경삼가해’ ‘역주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등 20여권의 언해를 역주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은 김 교수에게 각별하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것도 모질고 긴 암투병을 겪으며 완성한 역주작업인 것이다. 제자인 김성주(49) 동국대 강의교수가 공동역자로 참여해 도움을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이 이번 생의 마지막 역주일 듯싶습니다. 시력 탓에 책을 오래 들여다보기고 어렵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사실 이번 책도 역주를 함께 한 김성주 교수나 전산입력을 도맡아 해준 박사과정의 박대범군이 없었다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김 교수. 그처럼 파란곡절이 많은 경우도 드물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38선을 넘었던 그는 피란민 수용소를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18살에 당장 먹고사는 일을 걱정할 처지였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949년 6월, 악기 하나 다룰 수 없으면서도 해군군악학교에 들어간 것이나 전쟁통에 대각사 건물을 빌려 쓰던 동국대에 입학했던 것도 공부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학비를 어렵게 마련해가며 양주동 선생과 이병주 선생의 강의를 들었고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이후 중동고등학교 교사, 부산여자대학과 상명여자사범대학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모교인 동국대 강단에 서다가 1997년 2월 정년을 맞았다.


몇 년 후 전립선암이 확인돼 지금까지 40여회에 가까운 방사선 치료를 해야 했고, 그 탓에 장기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부인까지도 갑상선, 신장,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이런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이자 즐거움은 역시 학문이었다.


김 교수는 “올해 마무리될 ‘국어사자료연구’를 마지막으로 모든 학문을 접어야할 것 같다”며 “살아오는 동안 도움을 준 상사와 동료, 후학들에게 고마운 마음 끝이 없는데 갚을 길 없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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