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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최혜림씨

기자명 법보신문

나보다는 남을 의식해
시비·분별심으로 고통
참선 수행 접한 뒤로
나를 알아가는데 집중

 

▲선혜일·53

어렸을 때부터 50이라는 숫자와 함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어딘지 모를 어느 법당에서 법복을 입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해 다소곳이 서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부처님밖에 모르고 사시던 어머니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그런가 보다 생각하기도 하며, 늘 내 미래가 궁금했었다. 그래서 살다가 힘들 때마다 얼른 50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처님 앞에 서 있던 ‘나’는 지극히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이어서 인생에서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더 이상 구할 게 없는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안국선원에 와서 마음공부를 한 지 이제 19년이 되어간다. 마음공부를 하고 난 뒤, 똑바로 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한 생각을 일으켜 사물을 본 인과가 얼마나 큰지 뚜렷이 알게 되었다.


지난해 아들이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처음엔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공부한 힘이 있어서 빨리 마음을 추슬러 안정을 되찾았는데 며칠 뒤 냉동실 문을 여니 다 못 먹고 간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찰나에 눈물이 맺히고 보고 싶다는 한 생각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걸 객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다는 걸 확연히 알았다. 알아채자마자 모든 것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졌다.


‘이것이 그렇게도 스승님들과 선사들이 한결같이 말했던 안이비설신의 6근에 속아 주인 노릇 한 번도 못하고 객으로 살다 간다’는 도리구나. 나는 기쁨에 온몸이 떨렸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옛날에 내가 화두를 타파했을 때와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이제야 그렇게도 궁금했던 50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때 50이 모든 게 완성되어 있는 단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첫발을 땅에 디디고 찰나찰나 다 새로운 시작이요, 출발점인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는 힘이 강해진 것 같다. 전에는 나를 보기보다 남이 먼저 보여 옳고 그른 시비 속에 휩싸여 분별심이 늘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알아가야 할 게 너무 많아 모든 관심이 나에게 집중된다. 어쩌다 남이 보여도 이제 시비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철들게 해 주는 고마운 스승으로 보이고, 나라는 것을 고집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모든 게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옛날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반은 잠으로 세월을 보냈다. 나는 선생이랍시고 학생이 내가 강의할 때 하품만 해도 정신 못 차렸다고 야단치면서 그렇게 귀한 법문을 해 주시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어둠에 덮여 얼마나 졸았는지, 모순덩어리 나였다.


그러니 어찌 삶이 힘들지 않았겠는가. 제일 좋은 자리에서 자기를 가로막는 건 나 자신의 업이라는 걸 똑바로 알고부턴 그 많던 잠이 다 달아나서, 요즘 법문을 들을 땐 온몸에 환희심이 흘러 몸이 있는지 없는지 공중에 그냥 흘러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이제 내 스스로 길을 알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 길을 바로 가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으니 이제 정신 차려서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 되었을 때 그날이 가장 빛나는 날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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