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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사찰 중수 앞장섰던 기록 찾았다

  • 교학
  • 입력 2013.04.26 23:59
  • 수정 2013.04.2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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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술원 ABC사업팀
동화사, 용연사 등 전적조사 중
보물급 불교 문헌 무더기 발견


‘법화경’ 등 2책 최고본 확인
‘은중경’도 현존 최고 목판본
‘숭보기’는 김홍도 신심 입증


대구 지역 사찰에서 보물급으로 추정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불교 문헌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5일까지 대구 동화사, 신둔사, 용연사, 파계사에서 실시한 불교기록문화유산 조사 결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일본인 ‘묘법연화경’ 2책과 ‘부모은중경’ 1책, ‘발심수행장’ 등 총 4책의 보물급 문헌이 발견됐다고 4월26일 밝혔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집성팀장인 이종수 박사가 대구 동화사를 비롯한 4개 사찰 전적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귀중 문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 동화사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 2책은 성달생 서본(書本)으로서 조선전기 판본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적이 없는 판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는 평가다. 또 1564년(명종 19) 이순재 가문에서 간행한 용연사 소장의 ‘묘법연화경’도 간행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실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문헌들은 서지학적으로 ‘묘법연화경’ 번각의 시기별 변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 1564년(명종 19) 이순재 가문에서 간행한 용연사 소장의 ‘묘법연화경’.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조사한 문헌은 동화사 518건, 신둔사 16건, 용연사 135건, 파계사 228건 등 총 897건이다. 총 조사인원 27명, 연인원 399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묘법연화경’과 더불어 가장 주목받은 문헌은 ‘부모은중경’이다.


이 문헌은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시대가 가장 올라가는 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13~14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판단되며 경주 기림사에 소장된 1300년 간행 목판본과 비교해 볼 때 아직 어느 것이 더 앞선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부모은중경’과 달리 상중하 3권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현존 최고의 목판본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종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사업단 집성팀장은 “이번 ‘부모은중경’은 1300년 무렵 판각된 것으로 여러 자료를 조사해보고 서지학자들의 자문을 들어본 결과 현존 최고의 목판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존 최고의 목판본으로 추정되는 ‘부모은중경’.

 


‘발심수행장’도 대단히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은 ‘계초심학인문’이 결장되고 ‘발심수행장’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에 ‘자경’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몽산화상시중’ ‘고담화상법어’ ‘시각오선인법어’ ‘몽산화상법어약록’ 등이 함께 간행된 합인본이다. 1579년에 간행된 지리산 신흥사본보다 앞선 판본으로 국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처음 소개되는 판본으로 밝혀졌다.


동화사에 소장돼 있는 사지류인 ‘숭보기(崇報記)’도 큰 관심을 모은다. 조선 최고의 화백으로 직접 불화를 그리기도 했던 단원 김홍보가 불교에 깊은 애정을 가졌음을 입증해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1790년 남지장사 중창불사에 참여한 시주자를 기록한 이곳 ‘숭보기’에는 당시 안기찰방이었던 김홍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다. 당시 안동부 판관이었던 서퇴수가 1787년에 남지장사를 방문했을 때 사찰 전각이 퇴락한 것을 보고 복원할 것을 발원했다. 이어 서퇴수는 모계대사에게 사찰을 중수할 것을 명하고 스스로 큰돈을 시주했다. 이 때 그 지역에서 벼슬하고 있던 김홍도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앞장서서 모금에 참여해 남지장사를 중수했던 것이다. 또 ‘숭보기’에는 당대 최고의 화엄학 대가였던 인악의첨의 서문도 포함돼 있다.

 

 

▲1790년 남지장사 중창불사에 참여한 시주자를 기록한 이곳 ‘숭보기’에는 당시 안기찰방이었던 김홍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다(오른쪽 위).

 

 

파계사에서 나온 8건의 자료들도 학술적․문화적으로 가치가 크다. 영조와 원비(元妃) 정성왕후의 원당임을 증명하는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영조의 부왕인 숙종이 꿈에서 어떤 승려가 대전(大殿)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깨어났다. 3일 후에 상서로운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그 빛이 나는 곳을 찾아가도록 했다. 그곳에는 파계사에서 왔다는 영원대사가 있었다. 대사를 불러보니 꿈에서 만난 바로 그 승려였다. 숙종은 영원대사에게 기도하게 해 태조를 잉태했고 이후 파계사를 영조의 원당으로 지정하게 했던 것이다.


이번 발견 자료들에 따르면 실제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인 1712년에 잡역을 면제하라는 완문을 직접 파계사에 발급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어의궁에서 관리하게 해 잡역 면제 완문을 발급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예조에서 직접 파계사의 잡역 면제를 지시하는 완문을 발급했다. 영조가 이렇게 여러 번 잡역면제의 완문을 발급한 이유는 임금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시기가 흐르면 지방관청에서 다시 그 사찰에 잡역을 부과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듯 영조와 파계사의 긴밀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에 발견된 ‘원당시초영건기’ ‘영조어필’ ‘어압완문’ ‘종친부완문’ ‘어의궁완문’ ‘파계사원당사적’ ‘예조절목’ 등이다. 이 자료들은 18세기 불교 고문서 연구를 비롯해 왕실의 불교신앙과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자료 조사에 적극 참여해 준 사찰들에 조사를 마친 고서 및 다라니를 포장해 전달했으며, 첨단 장비로 촬영한 대규모 이미지 파일 복사본도 함께 제공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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