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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계기원은 사찰 보 현대 은행·보험과도 상통”

  • 교학
  • 입력 2013.05.02 09:38
  • 수정 2013.05.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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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흥식 한중연 명예교수
‘한국의 중세…’서 밝혀
현대 복식부기와 유사
사찰회계, 향교로 전승

 

▲허흥식 교수

한국 전통회계는 신라와 고려에서 발달한 보(寶)에서 기원했으며, 당시 사찰에서는 수입과 지출, 총계를 분개(分介)해 수록하는 등 현대 복식부기와 유사한 방법이 사용됐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허흥식(71·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최근 집필한 ‘한국의 중세문명과 사회사상’(한국학술정보 간)이란 저술 중 ‘보의 보험기능과 회계’ 장에서 “현대 회계에서 수익과 지출의 균형이 중요하듯 중세의 회계에서도 총액과 지출의 균형을 이루고 투명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부처님과 길일에 의탁해 유지하려고 (목적 사업을 완성하고 작성한 문서인) 형지기(形止記)로 정리했음을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허 교수는 고려시대 회계 수준의 파악을 위해 당시 고려 사찰에서 시주를 원금으로 삼아 보존하는 존본(存本)과 이를 이용한 이득인 취식(取息)에 이르는 경제활동 과정을 분석했다. 또 1038년 조성된 불국사탑지에 실린 문서, 다양한 회계용어가 등장하고 있는 송광사 소장 ‘수선사 형지기’ 등 관련 고문서를 포괄적으로 검토했다.


이런 허 교수에 따르면 고려의 회계용어는 주로 보에 대한 문서와 함께 남아있다. 보는 삼보처럼 자비와 구휼에서 비롯됐지만 자본의 활용과 이식의 확대를 통한 금융의 회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존하는 고려 초기의 형지기라 불리는 정도사탑지에는 신라의 수학 및 회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계회(計會)’라는 용어가 쓰였고, 이는 불국사탑지의 내용과도 직결된다. 또 비용을 총괄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計二百一(계이백십일)’도 물량의 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회계와 관련된 표현에 가까우며, 문서에서 연혁 다음에 오는 총괄 회계의 부분, 작업일지에 해당하는 지출, 시주의 수입 부분으로 나누는 분개(分介)는 현대의 복식부기와 상통하는 원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허 교수는 1024년 불국사 탑지에 쓰이고 있는 ‘출납(出納)’이라는 용어에도 주목했다. 출납이란 회계문서에서 출(出)과 납(納)으로 구분되듯 이 두 용어는 서로 상반된 동사이고 이분법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출납은 회계용어로 들어온 자산이나 자본을 기록에 올린다는 뜻의 회계 용어로 사찰 관련 문서에서 ‘장부에 잡힌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고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설명이다.


허 교수는 사찰 보에 대해서도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부처님의 검소함과 청정한 생활만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고려 불교계가 신도의 후원을 받아 부처님이 도달하려던 이상세계를 보여주면서 신도의 참여를 권장했고, 구휼을 통해 부처님이 강조했던 자비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 바로 ‘보’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집도 절도 없다”는 속담을 언급한 뒤 비록 고려말 일부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신라와 고려에서 사원들이 실시한 빈민 규휼은 조선 성리학의 종교기능을 능가하면서 속담으로 살아남았을 정도로 사회 기층에서 오래 기억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허 교수는 성리학을 국가이념을 내세운 조선의 국가와 지방사회는 고려의 속성을 벗어나려 시도했음에도 향교와 서원, 그리고 개성상인 등에게서 고려의 사원이 보를 통해 활용했던 회계가 뿌리 깊게 계승되고 있음도 함께 밝혔다.


허 교수는 “고려에서 국가와 지방관청의 재정을 유지하는 팔관보나 학보를 모두 사원의 보에 운용을 의뢰할 정도로 사원의 보는 구휼과 보험의 기능이 탁월했음은 특기할 사항이다”라며 “부처님과 천명에 의지해 투명하면서도 불교의 기본사상을 실용수학에 발휘한 절제와 경건의 회계법이 고려 사원의 보에서 활용됐다”고 말했다.


한편 허 교수가 집필한 ‘한국의 중세문명과 사회사상’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국중세의 창조성과 사상을 동아시아 역사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책으로 718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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