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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선우 조성택 이사장

기자명 법보신문

인류 최초의 교사 부처님은 최고 보다 훌륭함 추구했다

종교적 경험 독점하던 인도서
스스로 제자찾아 가르침 나눠
현재의 행위 바꾸는 것 수행
모두 다 최고만 좇아 가다간
소중한 가치 놓칠 수도 있어

 

 

▲ 조성택 이사장

 


오늘 여러분들에게 고대 문명사적 관점에서 불교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싯다르타는 왜 출가 했는가, 그리고 고대 문명사회에서의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간 사람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고대 문명의 기본구조입니다. 고대 문명은 각자 가정을 꾸리면서 밖으로 나가 일을 해 재화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집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밖으로 나가야 자아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상 최초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재화를 축척해나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욕망이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은 인간입니다. 내 것, 내 경작지, 내 아이 모두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으신 분입니다. 자아를 찾아 집을 나가는 구조.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교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사문유관을 통해서 고통을 봤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스무 살 가까운 청년이 시체를 처음 보고 노인을 처음 봤다는 것이 얘기가 안 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봤을 때 이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갖고 있는 보편적 문제로 의식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였다면 출가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문명적인 문제, 인간 실존의 문제였다는 점, 그것이 출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당시 부처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청년들도 출가를 했습니다. 사문이라고 하지요. 사문의 의미는 ‘추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당시 인도의 종교문화는 바라문교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신을 밖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신을 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불교를 문명사적으로 보자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철기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농업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먹고 쓰는 이상의 생산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풍요로운 사회에서 물질과 명예,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던 바라문교의 진리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처님께서는 밖에 있는 신을 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 중심의 질서를 강조하셨습니다. 길흉화복, 흥망성쇠는 신이나 신에게 제사 지내주는 바라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나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인본주의의 자각, 그것이 부처님 출현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자각이 부처님께서 집을 나서게 된 큰 의미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이제 고대 문명사적 관점에서 불교의 의의를 저는 서너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교사로서의 붓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교사입니다. 인도 사회에서 깨달음의 종교적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알았으면 그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일종의 자기 비밀을 알려 주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의 의미는 큽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이 생각한 바를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굉장히 적극적인 종교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동아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오면서 도인은 그냥 앉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나고 다니면 격이 떨어진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교사였고, 스스로 깨친 것은 이것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부처님도 당신 스스로 제자를 찾으러 갑니다. 60명의 비구를 만나는 과정을 보십시오. 카필라바스투로 가셔서는 결혼한 야사를 강제로 출가 시킵니다. 부처님께서 교육자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칭찬입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 제자가 질문하면 선재라고 했습니다. 요즘에서야 교육에 있어서 칭찬의 효과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칭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재, 너는 이것 이것을 묻고 있구나라고 칭찬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두 번째는 마음수행으로서 명상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전에 명상은 신비체험 수단이었습니다. 신비체험만이 아니라 초능력을 갖기 위한, 심지어는 공중부양을 한다든지 신비한 빛을 본다든지 하는 부분에 굉장히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사실상 마음 수행이라는 것은 불교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비체험이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리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윤리가 결여된 명상은 사교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체험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이 윤리적인 것이어야 하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윤리와 체험이 결합된 것을 강조한 것은 부처님이 최초였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수행은 내 업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업을 들여다보는 것은 내 무의식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고, 궁극에는 내 현재적 행위를 통해서 과거를 바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계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교학을 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계율은 아주 중요합니다. 계율을 관심 있게 읽어보면 정말 사소한 것까지 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의 법은 대부분 포괄적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절도고, 폭행이고, 폭행 치사인지 구체적으로 정한 법률은 근대법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근대의 법 이전에 하나하나 세밀하게 정해진 계율은 불교가 유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근대에서 세밀한 법을 정한 이유는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죄에 대한 처벌이지 사람에 대한 처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처벌이 아닌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가 논의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행위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정과 치유의 방식을 논의해야 되는데, 분노에 차서 없애고 격리해야 된다는 우리 사회의 법은 반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반이성적으로 갈 때 종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의 가치를 천편일률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는 비정상적입니다. 뛰어남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중요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바로 훌륭함이라는 가치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교에서는 훌륭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뛰어남, 우수함만 남아 있습니다. 훌륭함에 대한 관심이 소멸돼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부처님은 뛰어난 분이시고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제자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주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돌아선 제자를 찾아가 교화를 시키셨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훌륭함에 대한 기반은 인문학과 종교, 특히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강의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강의는 5월2일 부산 여래사 불교대학이 개최한 부처님오신날 봉축 특별 초청 강연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조성택 이사장


조성택 교수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와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토니부룩 뉴욕 주립대 비교종교학 교수를 역임하고 2002년부터 고려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우리는선우 제3대 이사장이다. 불교 이론, 실천수행, 불교 생태학, 불교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2004년 불이상 학술부문, 2011년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바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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