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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선우 감독 ‘화엄경’

기자명 법보신문

열린구조로 이분법을 초월한 영화

‘화엄경’은 고은의 동명 소설 『화엄경』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초창기 영화의 주요 소재원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소설과 영화가 갈등없이 공존하던 시기를 지나 감독의 연출의도에 따른 각색과 변형을 중시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화엄경’은 소설과 영화가 대단히 독립적이다. 고은의 소설 『화엄경』은 장선우의 영화 ‘화엄경’에 제목과 소재 제공이라는 소극적인 역할을 했을 뿐 감독의 보이지 않는 시선과 목소리가 개입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장선우는 감독의 길을 걷기 이전에 한 월간지에 영화평론 활동을 펼쳤었다. 그 당시 ‘신명의 카메라’와 ‘카메라의 눈’이라는 놀라운 조어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학창시절에 펼쳤던 마당극에서 구조와 신명을 영화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눈에 띠는 것은 마당극의 열린 영화 구조가 분명한 결말의 부재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일정한 해결없이 결말 형식이 열려있다. 또한 롱 테이크와 롱 쇼트 혹은 풀 쇼트를 위주로 하는 여백이 많은 화면구축을 시도했다. ‘화엄경’에서도 롱 테이크와 롱 쇼트 그리고 거기에 팬으로 이동하여 한 폭의 동양화같은 분위기를 잡아낸다.

마당극의 살아있는 신명을 카메라로 잡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닫힌구조의 결말 방식을 과감히 버린다. 결말은 열린구조를 통해 관객들이 창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둔다.

이 같은 형식의 실험은 감독 스스로 보여줄 내용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채택이다. ‘화엄경’에서 역시 장선우 감독의 형식이 어김없이 구사됐다. 하지만 관객의 창조적 개입은 난해한 주제와 표현방식으로 인해 해독에 이르러 무력함을 드러낼 것 같다.

선재는 어머니를 찾아 떠나지만 그가 만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의미를 부가하고 있어 소화하기 벅차게 한다. 소화력의 둔화는 선재의 언행적의 상징성과 불교적 교리로 포장된 감독의 사적 주장으로 더욱 가중된다.

물론 장선우 감독은 ‘선재가 이 세상을 학교로 삼아서 거룩한 영적 성장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영화화하려 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세상을 통해 영적 성장하는 선재는 소를 훔치다 실패하거나 무기수를 만나 평등은 없으며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는 발언을 듣는다. 무기수의 목소리는 변혁운동에 대한 환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논리를 찾는 발언으로 여겨진다. 선재의 어머니 찾기와 다소 거리가 있는 에피소드의 남용은 해독의 난해성을 초래한다.

감독 스스로도 ‘화엄경’은 “변증법은 ‘있다’ 다음에 ‘없다’로 갔다가 그 둘을 종합하는데 화엄에서는 그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변증법을 초월하는 사상에의 갈망”에서 출발하였다고 언급했다. 화엄사상은 변증법적 이분법을 초월 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관심을 끈 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련과 지호의 갈등은 선재의 노래로 치유된다. 그 노래는 ‘강은 강을 잃어 바다가 되지요. 꽃은 꽃을 잃어 열매가 되고요 나는 또한 마음을 잃어 허공이 되었어요’다. 노래는 예술이며 영화와 동일시할 수 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진리를 설하고 이련과 지호의 갈등 치유같은 화해의 공통체를 모색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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