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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나를 경책하는 스승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09.02 14:18
  • 수정 2013.09.02 14:29
  • 댓글 0

인간이 인간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을 사고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을 단지 인간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함을 뜻한다고 이해한다면 아직 ‘세상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을 위해 하는 일들이 인간 아닌 것들에게 어떤 것이 되어 돌아갈지에 대해 전혀 눈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령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를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투여한 인간의 노동시간이 결정한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토끼 한 마리의 가치는 그것을 잡기 위해 투여된 사냥꾼의 노동시간이 결정하게 된다. 한 생명의 가치가 그것을 죽이는데 필요한 인간의 노동시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손대지 않은 처녀림은 그것을 베어 운반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 아마존의 밀림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이런 인간중심적 가치이론 때문이다.


1966년,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런 ‘인간’이란 관념이, 인간중심주의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써놓은 글씨처럼, 물이 한번 들어차면 이내 지워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 사고하지 못하는 한, 지구는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실은 지구의 표면에 기생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는 민족이나 종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류학자들이 자주 비판하는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가 그렇다. 누구든 자기민족의 전통이나 관습, 문화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란 점에서,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습관이나 전통이 다른 민족을 평가하게 되면, 아주 폭력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런 종류의 ‘~중심주의’는 다른 수준에서도 매우 쉽게 발견된다. 모든 ‘~중심주의’는 자기가 속한 집단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중심주의에는 내가 익숙한 것, 내가 속한 집단이 옳다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으며, 내가 속한 것과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 포함되어 있다. 나와 다른 것, 이질적인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할수록, 이런 ‘중심주의’가 강하다고 해야 한다. 이 모든 ‘~중심주의’의 뿌리에 자기중심주의가 있다. 자기중심주의가 불교에서 ‘아상’이라고 말하는 것의 다른 이름임은 알기 어렵지 않다.


불교는 바로 아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지혜의 눈이 열리며,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가르침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 가르침은 달리 말하면, 나와 다른 것에 마음을 열어야 함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해야 함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불교는 심지어 ‘불교’라는 경계마저, 내외를 가르며 호오를 분별하는 그 경계마저 내려놓을 것을 가르친다. 인간중심주의를, 자민족중심주의를 벗어나 나와 다른 타자, 나와 다른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유하라는 현대철학의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보다 불교철학과 쉽게 통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주민에 대한 불교도들의 태도가 다른 종교에 비해 더 편협하고 닫혀 있으며, 다른 종교에 비해 더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는 최근 법보신문 기사(8월21일자 1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불교계 낙제점’)는 매우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자기 외부에, 자기와 다른 것에 열려 있을 것을 가르치는 종교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선방에 앉아 무아를 깨치는 길도 있을 것이다.



▲이진경 교수

나와 다른 이들, 나와 다른 생각, 내가 생각지 못한 것으로 다가오는 세상과 만날 때마다 나 아닌 그 타자 입장에 서기를 반복한다면, 그 또한 무아를 향해 다가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주민처럼 내게 다가오는 외부자들이야말로 내게 깨달음을 경책하며 오는 나의 스승들이 아닐까?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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