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증명청-하
35. 증명청-하
  • 법보신문
  • 승인 2013.09.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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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로왕보살 화려한 장엄은
영적 존재에 베풀 복덕 상징
보살 인도받는 건 맑은 영혼


불교의례와 의식은 문예미학의 보고(寶庫)이다.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된 경전에는 법회 상황과 질문과 응답이라는 상황이 묘사되므로 아무래도 설명적인데 비해 불교의례와 의식에는 이미 수없이 반복되며 압축되고 정제된 언어의 메시지로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앞 호에서는 해석한 증명청의 내용을 실었지만 의례 의문의 문예미학을 설명하기 위해 부득이 원문을 다시 한 번 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법회에서 청하는 말은 당일 의식을 주관하는 법주스님에 의해 낭송된다. 법주스님이 “나무일심봉청 수경천층지보개 신괘백복지화만 도청혼극락계중 인망령향벽련대반 대성인로왕보살 유원자비 강림도량 증명공덕” 하고 나면 바라지스님이 “향화청”을 삼창하며 꽃을 뿌린다. ‘나무일심봉청’이라는 말은 이제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는 예경, 귀명, 귀의의 뜻으로 인사를 드린다는 뜻이지만 ‘나무아미타불’에서 볼 수 있듯이 명호를 칭명하는 진언과 같은 구실을 하므로 별도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예경하며 일심으로 받들어 청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그 다음 두 구절은 인로왕보살을 묘사하고, 다음 두 구는 인로왕보살의 역할을 설명해주고 있다. 수식하는 두 구절을 먼저 보기로 한다.


‘手擎千層之寶蓋(수경천층지보개)/ 身掛百福之華(신괘백복지화만)’


손에는 천 층으로 만들어진 보개(일산)를 들고 있고, 몸에는 백 가지 복으로 장식된 화만(육수가사)을 걸치고 있다. 일산을 든 것은 길을 떠날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한 것이고 몸에 걸친 화만은 걸치니 가사의 장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구절은 18세기 이전 본에만 해도 ‘천 층’이니 ‘백 복’이니 하는 숫자적인 비유 수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본에서 첨가되기 시작하였다. 일산은 신분이 높을수록 화려하다. 화려함의 극치를 천 층으로 비유하였다. 또 화만을 장식하는 구슬을 백가지 보배의 복이라고 하고 있다. 인로왕보살이 왜 최상의 장엄을 할까. 바로 인도할 영적 존재들에게 베풀 복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인로왕보살은 이제 “도청혼극락계중(導淸魂極樂界中) 인망령향벽련대반(引亡靈向碧蓮臺畔)”을 한다. 두 구로 나눠져 있지만 의미는 한 구라고 할 수 있다. 청혼(淸魂)인 망령을 극락세계 연화대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 있는 진술은 인로왕보살이 인도하는 망령은 청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옥을 깨고 인도하고 있지만 망령이 청혼이 아니면 인로왕보살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 중층적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불교의례의 모습이다. 망령을 깨끗한 영적 존재로 바꾸어주는 의식이 재이지만, 재 의식에 오는 이들은 맑은 존재가 아니고는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때와 업장이 많은 영적 존재들이 재에 동참할 수 없다며 무차평등법회라는 재의 본질과는 다르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청혼(淸魂)을 청혼(請魂)하기 위해서 증명청에 이어 고혼청을 할 때 청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법어를 들려주면서 청혼을 하는 것이다.

 

▲이성운 박사

수행과 깨달음이 있는 법주스님이 법어와 함께 청혼(請魂)을 함으로써 청혼(請魂)하는 순간 청혼(淸魂)이 되어 인로왕보살의 인도를 받아 법이 베풀어지는 연회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성운 동국대 외래교수 woochun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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