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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권리와 보상금

기자명 법보신문

후쿠시마, 어떻게 보아도 지금 그곳은 저주받은 땅이다. 2만4000년을 지속될 방사능의 저주. 그런데 이 저주받은 땅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주민들이 재난 이후 후쿠시마에 다시 들어가서 살고 있다. 거기서 오염된 대지에 다시 씨를 뿌리고 그것을 거두며 살고 있다.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는 적지 않은 보상금을 준다고 하건만, 그것을 포기하고 무너진 집을 고쳐 다시 그곳에서 산다.


왜 그들은 그 저주받은 땅을 떠나지 않고 거기 살고 있을까? 대개 50~60세일 농민들이 도시에 가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이들이 도시에 가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이란 건 아파트 경비원이나 건물의 청소부 등과 같은 흔히 말하는 ‘잡일’ 말고는 없다. 실제로 후쿠시마를 떠나 이주한 농민들은 대개 그런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고 한다. 예전에 미군기지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경우 또한 그랬다고 들은 적이 있다.


전에 누구에겐가, 도시에서 좋은 집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자식들이 성화를 하며 같이 살자고 하지만, 올라와선 며칠 안 되어 다시 시골로 내려가는 할머니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리 고집스레 시골에 내려가는가 물었단다. 노구에 매일 농사일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그 일 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다시 내려가시느냐고.

 

“서울에선 할 일이 없어서 못 살겠어. 매일 빈집을 지키거나 기껏해야 동네 산보 하는 것밖엔 할 일이 없잖아.” 농사, 그건 할머니의 일상이고, 그 할머니 같은 농부의 삶인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그렇게 매일 만나는 땅과 풀, 함께 일하는 소나 이웃들과 함께 하나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목숨만큼이나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이 거기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살던 곳을 떠난다는 걸 그저 출퇴근에 걸리는 이동시간의 차이만 있다고 느끼며 이사할 곳을 찾는 도시인이 이 거대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보상금을 충분히 받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자본가나 관료들이 이 근본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강정이나 밀양의 주민들이 8년을 전후한 긴 기간을 “그곳에서 살던 삶을 계속 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그것은 보상금의 액수를 올리기 위한 투쟁 이상으론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호구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곳 주민들은 이제까지 살던 삶을 계속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고, 매일의 일상을 포기한 채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을 그저 보상금 올리려는 투쟁으로 밖에는 볼 줄 모르는 이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경제적 동물’이 되어 잔계산이나 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지속할 권리를 뜻하는 것이었을 ‘생존권’이라는 말을 단지 생존수단을 적절히 보상받는 것으로, 보상금을 받을 권리로 간주하는 것은 생존의 권리에 대한 경제주의적 모욕 아닐까? 그것은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나리타공항 바로 옆에는 지금도 매시간 지붕 위로 몇 개씩 거대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견디며 한 가족이 살고 있다. 공항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여 꽤 오랜 기간 격렬한 투쟁이 있었다. 그 투쟁이 패배하면서 결국 모두들 떠났지만, 끝내 보상을 거부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이진경 교수

그것은 보상금으로 ‘그곳에서 살 권리’를 대체하려는 경제주의적 계산에 대한 항의임에 틀림없다. 밀양에서 70전후의 노인들이 3000명의 경찰과 대치하며 휘발유통을 허리에 찬 채 묘자리를 파놓고 싸우고 있는 것 역시 이런 항의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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