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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불명산 쌍계사

계곡 두 개서 흘러온 지혜와 복락 물줄기세속 근심을 씻기다

대웅전 자체가 도량의 산증인
꽃살문·나무기둥이 세월 대변
용상에 때묻지 않는 관음 유명
꿈 이루는 아름다운 절로 기억

 

 

▲연꽃, 모란, 무궁화, 국화, 작약이 나무문에 피었다. 대웅전 어간문이 부처님께 꽃 공양이다. 이 아름다운 꽃살문이 연화장 세계를 만든다. 마음도 화사하게 핀다. 부처님은 두 눈 지긋이 내리깔 뿐.

 

 

대웅전이 얕게 숨을 쉰다. 나무문은 연꽃, 모란, 무궁화, 국화, 작약을 피웠다. 기둥은 자라던 모습대로 휘고 굽이쳤다. 늦은 오후 고양이 한 마리 주지스님 좌복 위에 앉아 한가롭다. 다른 고양이는 날지 못하는 벌을 좇느라 바빴다. 해는 불명산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절 마당 한 쪽에 연리근이 그늘을 드리웠다. 충남 논산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 쌍계사(주지 석조 스님)는 그렇게 하루를 호흡했다.


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 말사 쌍계사(雙溪寺)는 아직 가을 초입 문턱에 있었다. 가을바람은 불명산에 단풍을 뿌리다 말았고, 해는 느릿느릿 하루를 마감했다. 일주문조차 없는 이 도량은 찢어진 북 하나 덩그러니 올린 2층 누각이 대문이었다. 누각 기둥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 부처님이 아련하다. 누각 2층 바닥을 지붕 삼아 걷자 마음이 발끝에 가 닿는다. 일주문인 셈이니 세속에서 고개 치켜세우던 아상을 발밑에 내려놓는다. 합장하며 대웅전 부처님을 향해 돌계단 위로 마음 하나씩 올려 본다.

 

 

▲한 뿌리서 줄기 올린 연리근이 그늘 드리운 논산 쌍계사 전경.

 


넓은 마당 가운데 놓인 두 개의 돌길이 곧장 부처님을 향했다. 이대로 부처님을 참배하기엔 발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아상들이 무거웠다. 왼쪽으로 고개 돌리자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쌓은 돌탑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돌들은 서로 몸을 포개고 꼭대기에 저마다 부처님을 올려놨다. 한 분은 논산 관촉사나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같다. 단지 돌 한 개는 몸을, 다른 하나는 용상을, 나머지는 갓처럼 보였다. 다른 돌탑은 탑 가운데 공간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기도 했다. 누구 정성인지 모르나 도량 곳곳에서 부처님 숨결을 느끼게 했다.

 

 

▲야트막한 돌담 따라 돌탑들이 가지런하다.

 


가만 보니 대웅전 부처님은 돌아서 앉아 계셨다. 대개 서방정토인 서쪽을 봐야 하나 북향이었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흔치 않아 독특했다. 가만히 옆문으로 법당에 들어 삼배를 올렸다. 앉아서 한참 올려다보니 슬며시 웃음을 건네신다. 주불인 석가여래 좌우로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 부처님이다. 서서 볼 땐 좀처럼 웃음이 없다 무릎 꿇고 앉은 뒤에야 마음을 여셨다. 발끝에 뒀다고 여겼던 아상이 부처님 보시기에 머리 꼭대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낮추고 더 비우라는 경책이시리라.

 

 

▲스님 좌복에 앉아 오후를 만끽하는 고양이.

 


세월에 빛을 잃은 색들과 용, 학 등이 부처님 머리 위를 날며 외호하고 있었다. 적멸궁, 만월궁, 칠보궁 등 닫집이 부처님의 위엄을 대변했다. 주지스님 좌복 위에 앉아 꼼짝도 않는 고양이를 두고 법당 왼쪽으로 향했다. 유난히 검게 물들어 윤이 나는 나무기둥에 마음이 쓰였다. 대웅전 기둥 하나하나가 굵고 희귀한데 그 기둥만 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둥은 대웅전 기둥 가운데 유일한 칡덩굴 나무였다. 게다가 윤달이 든 해에 안고 돌면 죽을 때 고통을 면한다고 한다. 한 번 안고 돌면 하루 앓다가 가고, 두 번 안으면 이틀을 앓는단다. 그래서 3일은 이생에서 앓고 가야 서운하지 않다고 해서 세 번씩은 안는다고 한다. 이생에서 맺은 인연과 이별할 때 조금만 더 정을 나누고 싶다는 기도객들의 소망이 반질반질했다.

 

 

▲빛바랜 용과 학 등이 대웅전 삼존불을 외호한다.

 


법당 밖으로 나와 찬찬히 대웅전 주위를 맴돌았다. 문에 핀 꽃들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연꽃, 모란, 무궁화, 국화, 작약이 나무문에 피었다. 대웅전 어간문을 남모르게 살짝 닫았다. 문틈으로 부처님만 뵙고 싶었다. 그러자 이 아름다운 꽃살문이 연화장 세계를 만들었다.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리면 선한 인연의 뿌리가 끝을 알 수 없다던데…. 마치 대웅전이 살아 숨 쉬듯 꽃살문으로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렸다. 마음도 꽃살문 따라 화사하게 핀다. 부처님은 두 눈 지긋이 내리깔 뿐.


안내판을 보니 쌍계사의 숨 쉬는 대웅전이 보물 제408호였다. 창건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알 수 없고, 다만 영조 14년인 1738년 중창됐다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현재 공주 갑사에 있는 ‘월인석보목판(보물 제582호)’이 원래 쌍계사에서 보관했던 것이란다. 이 목판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판목이다. 특히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대장경이다.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훗날 세조인 수양대군이 불서를 참조해서 지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찬술한 책이다. 다음해인 세종 29년(1447)에는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사실 이 목판은 선조 2년(1569) 충청 한산에 사는 백개만이 시주해 활자를 새기고 쌍계사에 보관되던 것이었다.

 

 

▲돌탑 꼭대기에 갓 쓴 부처님 한 분.

 


‘숨 쉬는 대웅전’에서 꿈틀대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법당 안 ‘논산 쌍계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충남 유형문화재 제225호)’에서 나온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복장물이 발견됐는데 여기엔 불상 제작시기와 목적, 조각한 스님의 이름이 묵서로 기록됐다고 한다. 발원문에는 선조 38년(1605) 3월 자비승 영관 스님이 불상을 조성코자 장인에게 청해 7월에 완성, 쌍계사 2층 전각에 봉안했다고 적혀있다. 현재 쌍계사 대웅전이 1738년 중창된 단층 건물이니 그 이전엔 좀 더 웅장한 2층 전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불상을 조성한 장인은 원오, 신현, 청허 스님 등 4명의 스님들이었다. 원오 스님은 1599년 상원사 문수보살상을 개금했고, 1605년 김해 선지사 목조불상, 같은 해 익산 관음사와 혜봉사서 불상을 제작한 17세기초 대표적 장인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놀라웠다. 마음 꿇어 앉혀야 그 미소를 볼 수 있었으니, 원오 스님이 손끝에 어떤 신심을 담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대웅전 옆에는 일타 스님이 증명한 관음보살좌상이 계셨다. 다가갈수록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옷 주름 등이 때를 입었지만 용상만은 하얗게 빛이 났다. 이유가 궁금해 주지스님에게 차를 청했다. 스님은 쌍계사가 부처님 깨달음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중생에게 주어진 복락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모인 곳(雙溪)이라 했다. 그래서 지극하게 한 가지를 빌면 이뤄진다는 말씀도 곁들였다. 용상만큼은 비에 젖지 않는 관음보살은 틈만 나면 청소하는 연지행(56) 보살의 사연이 얽혀 있었다.

 

 

▲용상만은 절대 더럽혀지지 않는 관음보살.

 


연지행 보살은 관음보살이 도량에 들어오는 순간, 감격에 떨며 울었다. 사람들이 볼까 화장실에서 한참 눈물을 훔쳤다. 우리 부처님이라는 생각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자주 찾아뵙고 청소하고 신묘장구다라니를 한다 했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잘못된 보증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넘기고, 자녀들은 좋은 곳에 취직했다. 아들의 자격시험 날, 꿈을 꿨다. 여느 때처럼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올리고나자 스님이 공양간에 밥상을 차려놓고 먹으래서 맛있게 들고 깼다. 아들은 전기설계 자격증을 취득하고 삼성본사에 취직했다. 연지행 보살은 “누구나 불성이 있고 부처님을 가슴에 모시고 있지만, 우리 부처님은 쌍계사 관음보살”이라며 “늘 용상이 깨끗한 관음보살님을 거울 삼아 마음을 닦고 있다”고 했다.


주지스님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식어가는 차로 목을 축였다. 주지스님은 쌍계사의 자연미를 간직하고 싶어 했다.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꽃 피워내는 대웅전도, 하얀 용상의 관음보살도, 담장 위 돌탑도 그 자리에서 시간과 함께 숨 쉬길 바랐다. 꿈이 이뤄지는 아름다운 도량으로 그렇게 남길 원했다. 뜨거운 차가 다시 찾잔을 채웠다.

 

 

▲아름다운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소원지.

 


부처님 지혜와 중생 복락이라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쌍계사의 대웅전, 그 도량 마당에 한 뿌리에서 자라 두 개의 줄기를 뻗어 올린 연리근, 그늘을 짙게 드리운다. 하루를 마감하며 새 아침을 준비 중이다. 그렇게 수백년, 쌍계사는 두 개 물줄기로 세속 근심 씻겨냈다.


씻고 씻어내 맑아진 신심이 연리근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란 단풍 완연한 연리근의 가을은 어디쯤 왔을까. 041)741-2251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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