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임종론
43. 임종론
  • 법보신문
  • 승인 2013.11.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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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서 죽은 예수는
중생같은 죽음에 불과
죽음도 예고한 붓다와
근본적인 차이점 보여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예수의 죽음이다. 인간 구원을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신의 아들이 왜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을까? 인간을 창조해 놓고 명령을 어겼다고 무참히 복수한 일, 인간 구원을 위해 처녀를 임신시켜 아들까지 보낸 일 등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예수의 죽음에는 합리성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신이 인간을 용서하는 길이 이 방법밖에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그토록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이 그냥 과거의 잘못을 모두 덮어버리고 구원하면 될 것을 왜 이토록 복잡한 방법을 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순전히 인간의 죄를 대신 씻어주고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켰도다.”(이사야 53장)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장)


이처럼 예수는 인간들이 지은 죄악을 모두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이유는 소위 신성모독 죄였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는데 예수가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말하고 인간의 죄를 씻어준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예수는 먼저 유대인의 법정에서 유대교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 신성 모독죄로 재판을 받고 곧 로마의 빌라도 총통에게 인계되어 십자가형을 선고 받는다. 예수가 죽는 광경은 매우 처절하다. 물 한 모금 얻어 마사지 못한 채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라는 곳에 끌려가 양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가 창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죽는다. 신의 아들로서 온갖 기적을 행하고 영광을 보이던 모습은 간데없고 세상의 죄인이 되어 나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숨을 거둔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였다. 참으로 부처님의 임종과는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임종은 예수와 달리 매우 자의적이고 영광된 모습을 담고 있다. 부처님의 임종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을 해결한 성자답게 이루어진다. 임종의 이유도 다만 몸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난다여 여래는 때를 안다. 여래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 여래는 3개월 후 구시나가라 사라수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유교경) 이처럼 부처님은 3개월 전에 이미 자신의 임종을 예고하고 구시나가라는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주 고요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임종에 든다. 부처님의 임종은 죽을 때를 알고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시간과 방식, 장소를 스스로 선택한다. 부처임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입멸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처님은 선정과 지혜가 완전한 분으로 태어남과 죽음을 자유자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예수와 달리 진리를 성취한 성자는 절대 외부의 영향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과거 생에 닦은 선행의 결과이며 공덕의 영향 때문이다.

 

▲이제열 법사

부처님은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완전히 벗어나는 법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경지를 보임으로써 부처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모든 법이 무상하니 쉬지 말고 정진하라”였다. 예수가 인간처럼 와서 인간처럼 죽은 분이라면 부처님은 신처럼 와서 신처럼 가신분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불교에서 말한다면 한마디로 번뇌와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한 중생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열반으로 가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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