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참선 했지만
일상선 여전히 고통
지관수행 시작하고는
오욕락 견딜 힘 생겨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때 문제를 다 풀고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일찍 시험장을 나왔는데 나중에 들려온 얘기 한마디에 내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분노, 실망으로 끓어올랐다. “뒷장 문제 어땠어?” 뒷장 문제를 놓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문제 아닐 것 같은데 그 당시 너무 화가 나고 괴롭고 힘들었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궁지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기숙사 침대 위에 반가부좌하고 가만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선과 인연이 있었던지 “이렇게 분노하고 실망스러운 지금, 참나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아무 흔들림이 없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 되뇌자 그 순간 괴로움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몇 시간의 참담한 괴로움이 단 몇 분의 ‘자기 살펴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순간 참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구나하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런 인연이후 불교학생회 좌선모임에서 보림선원과 인연이 되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참선과의 인연이 지속되고 있다.
40대 초반의 어느 날 20대부터 해왔던 선수행의 결과를 점검해 볼 기회가 있었다. 화개선원에서 1박2일 선 수행 수련회에 갔다가 선원장 스님으로부터 단독 점검을 받을 때 “왜 참선을 합니까?”라는 물음에 “(당연히) 깨닫기 위해서 하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스님께서 “참말입니까?”라고 말했고, 그 말에 놀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20년 이상을 참선한답시고 다녔는데 돌이켜보니 여전히 고통에선 자유롭지 않았고,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 참선자가 된 느낌이었다. 참선을 위안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지관수행을 시작했다.
“지금 그 ‘아는 마음’이 있죠? 그 아는 마음이 지속되도록 하세요. 그게 마음입니다.”라는 선원장 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다시 수행을 시작하였다. ‘아는 마음’은 내가 밥 먹을 때나 운전, 공부, 회사에 있을 때도 그 밝음이 덜해진 적이 없는데 내가 잠시 멍해지거나 생각에 휘둘리자마자 그 아는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없어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 대승기신론을 공부하고 있던 터라 “모든 경계에 끄달리는 마음을 그치는 것이 지(止)요, 인연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는 말씀처럼 내안에 일어나는 분별, 생각을 멈추는 것이 곧 지요, 그 상태를 지속하여 외부에 일어나는 법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음을 관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견해가 딱 일치하였고 평소 생활에서 내가 쉴 새 없이,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는 생각의 거대한 흐름을 자각하고 멈추기 시작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참선초기 수식관 호흡수행과 생각 알아차리기, 나의 생각 거꾸로 돌려보기 등을 통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마음’을 분명히 세워서 생각을 알아차리게 되니 생각이 점점 미세해지고 생각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참선의 수행도 훨씬 더 깊어지고 몸의 경직된 힘이 빠지고 마음이 아주 유연해 지며 공포(두려움)도 눈에 띄게 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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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