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트롱사종
21. 트롱사종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3.12.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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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씨앗 키운 풍요롭고 강력한 부탄 최대의 종

부탄 동서 교역로 요충지
경제·정치 중심으로 성장
초대 국왕 부친 지그메는
트롱사종 지배하던 군주

 

 

 

 

▲트롱사종은 부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종이다. 부탄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교역로의 요충지에 위치한 트롱사종에는 풍요로운 경제력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정치와 군사제도가 일찍이 자리 잡았다.

 


해발 3420m 페렐라고개를 넘으면 중앙부탄에 속하는 트롱사지역이다. 페렐라고개에서는 해발 7314m의 히말라야 고봉 조몰하리를 비롯해 해발 7000m에 육박하는 여러 고봉들을 볼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날씨가 맑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날씨에 관해서 만큼은 한 푼어치의 공덕도 쌓은 바 없음이 분명한 일행은 이번에도 잔뜩 쌓인 안개와 구름 속을 허우적거리며 페렐라고개를 넘어 트롱사에 발을 들였다.


페렐라고개를 넘어 만나는 첸덥지마을을 조금 지나면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첸덥지초르덴이라는 탑이 서 있다. 네팔 전통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탑은 19세기에 시다라는 티베트 스님에 의해 조성됐다. 그가 악마를 제압하고 이곳에 묻어버린 후 탑을 조성했다고 한다. 탑은 발우를 엎어 놓은 모양의 둥근 탑신 위에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그려져 있는데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상징하는 스와얌부나트스투파를 모델로 조성된 까닭에 스와얌부나트스투파를 축소해 놓은 듯 닮아있다. 역사가 길지 않은데 비해 첸덥지초르덴이 위치하고 있는 길은 탑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길은 부탄에 불교가 전파되던 초기, 전법에 나선 스님들이 지나다녔던 길 ‘초르덴 패스’ 즉 ‘탑의 길’의 서쪽 끝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탑을 지나면 부탄불교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트롱사에 왔으니 당연히 트롱사종을 만나야 한다. 트롱사종은 부탄에서도 가장 큰 종이다. 부탄에서 가장 큰 종이 트롱사에 세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이 중요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롱사종은 부탄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가장 중요한 교역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 트롱사가 정치와 경제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된 것은 당연하다. 부탄의 동서를 오가며 교역을 하려는 상인들은 반드시 트롱사종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보다는 교역로의 요충지에 종을 건설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트롱사종은 망데추라는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계곡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계곡에는 작은 다리가 놓여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부탄의 동서를 왕래할 수 없었다. 트롱사종에서는 바로 이 다리를 건너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걷었다. 이러한 이유로 티롱사종에는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배 시스템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현재 부탄왕국의 1대 국왕인 우겐 왕축의 아버지 지그메 남걀이 바로 이곳 트롱사의 군주였다. 아버지로부터 전승된 정치, 경제, 군사력을 기반으로 우겐 왕축은 동쪽으로는 붐탕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푸나카를 지나 파로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군주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면서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리고 1907년 마침내 부탄의 국왕으로 등극했다. 부탄을 최초로 통일 시킨 영웅 샤브드롱 이후 또 다시 분열돼 있던 부탄이 통일된 왕국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바로 이곳 트롱사종이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롱사종은 드룩빠 까규파의 스님인 가기 왕축에 의해 1543년 지어졌다. 처음에는 지금과 같이 큰 종이나 사원이 아닌 명상과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작은 암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암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고 하나둘 건물이 들어서 마을이 조성되기에 이르렀고 마을은 트롱사라 불리게 되었다. ‘트롱사’는 이 지역의 방언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647년 샤브드롱이 이 근처 마을에서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망데추강이 흐르는 협곡 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목격한 샤브드롱은 길조로 여기고 해발 2200m인 지금의 자리에 트롱사종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에도 트롱사종은 보수와 증축을 거듭했다. 특히 1897년 발생한 지진으로 크게 훼손된 것을 보수하고 1927년부터 1999년까지 지속적으로 증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트롱사종은 안에 무려 23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있고 현재에도 200여 명의 스님들이 머물고 있는 거대한 사원이다. 스님들은 여름 동안 붐탕계곡에 있는 쿠르제사원으로 옮겨가지만 규모면에서는 여전히 트롱사종에 비견할만한 곳이 없다.


트롱사종이 유독 웅장해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조성된 형태 때문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계곡이 수직에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산마루에 외벽을 높이 쌓아올려 조성한 트롱사종은 산마루를 타고 오르는 듯 위용이 대단한다. 크기만큼 내부도 굉장히 넓고 복잡해 자칫 했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 듯 헌데 여전히 넓고도 멀다. 트롱사종에서는 어디까지 가봤는지 보다 얼마만큼 자세히 봤는지가 더 중요하다. 각각의 법당과 건물들은 아름답고 섬세한 목조각으로 장식돼 있다. 트롱사종의 외벽이 요새처럼 높은 성벽과 작은 창문으로 단조롭게 구성돼 있는데 비해 내부의 건물들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종 내부만큼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손꼽히는 푸나카종에 뒤지지 않는다. 트롱사종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각의 대부분은 첫 번째 국왕인 우겐 왕축 시대의 것으로 지금도 보존이 잘 돼 있어 눈길을 땔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트롱사종 매력의 백미는 전망이다. 외벽 쪽 창문에 기대서면 망데추강이 흐르는 협곡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탁 트인 시야가 하늘에서 굽어보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산등성이의 비탈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트롱사종의 외벽이 자세히 보이는데 이렇게 경사가 심한 산마루에 어떻게 이처럼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다시 트롱사종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들어 올리면 트롱사박물관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트롱사종의 뒤편 산꼭대기에 있는 이 건물은 본래 전망대이자 따종이라 불리는 작은 사원이었다. 19세기 지그메 남걀이 트롱사종의 군주였던 시기 그의 전용 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864년부터 이듬해까지 계속된 부탄과 영국과의 전쟁 시기 동안에는 두 명의 영국군 포로가 이 탑의 지하 감옥에 갇혀있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오스트리아의 지원으로 보수를 거쳐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트롱사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하다. 곳곳에 오가는 붉은가사의 스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끔 그들을 향해 불쑥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오히려 환하게 미소 지어주는 스님들에게 그 미소가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묻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간은 그리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붐탕으로 가야 한다. ‘아름다운 딸들의 땅’이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지닌 곳. 그곳에서는 또 어떤 놀라움과 아름다운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여정은 언제나 아쉬움보다 멀다. 그러니 이만 길을 서둘러야 한다.

 

트롱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1543년 작은 암자 조성 후
인근에 가옥·사원 들어서며
‘새로운 마을=트롱사’로 불려


17세기 샤브드롱이 종 건설
법당만 23개 부탄 최대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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