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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초기와 대승, 상호보완 관점서 바라봐야

▲ 그림=김승연 화백

한국불교 현대사에 있어 과거의 불교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들라면 누구를 거론할 수 있을까?

필자는 재가자로 대한불교진흥원을 설립한 대원 장경호 거사와 스님으로는 거해 스님을 꼽고 싶다. 장경호 거사는 익히 잘 알려진 인물이니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해 스님에 대해서는 머리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스님 중에서 거해 스님을 꼽을 수 있는지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해 스님은 한국불교의 질적 변화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친 분이다. 장경호 거사는 대한불교진흥원을 설립해 재가자의 불교포교에 한 획을 그었으며, 그의 남다른 포교 원력은 후대에 지금의 불교방송국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거해 스님은 세간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불자들이 기억할 정도로 활동력이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를 신행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을 뛰어넘어 수행의 세계로 들어 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왜 거해 스님이 한국불교 변화의 주역으로 거론되는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불교에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또 확산된 것은 순전히 거해 스님 때문이다. 1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불교는 대승불교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의식과 수행, 교학 모든 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불자들의 신행활동 또한 대승불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한국불교에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새롭게 전한 스님이 거해 스님이다. 거해 스님은 상좌부 불교국가에서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수행법과 가르침을 한국에 편 스님이다.

90년대 거해 스님에 의해
국내 초기불교 본격 소개

수행 다양성 순기능 불구
대승비판으로 혼란 초래

거해 스님이 국내에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 무렵이다. 당시 대승불교 일색이었던 한국불교에 거해 스님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님은 팔리어 예불문과 발원문, 경구를 암송했고 초기불교에 입각한 조리 있는 법문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행해지는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섬세한 가르침은 많은 불자들로 하여금 불교수행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그리고 이런 거해 스님의 활동은 국내에서 초기불교의 교리들이 바르게 이해되는 데 큰 힘이 됐다.

거해 스님의 활동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거해 스님처럼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상좌부 불교국가로 건너 가 불교를 공부하게 됐고, 이들이 다시 국내에 들어오면서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이 대거 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상좌부 불교국가로 건너가 출가하거나 공부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해 스님처럼 초기불교를 공부한 뒤, 가르침과 수행법을 국내로 들여와 펼친 인물은 드물었다. 거해 스님의 활동은 수행과 포교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학계와 출판계 나아가 수행단체들에게까지 파급돼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한국불교의 학문적, 실천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거해 스님의 이런 공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활동이 한국불교에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간과할 수 없는 역기능은 거해 스님의 활동을 기점으로 한국불교에 이념적 대립이 생기게 됐다는 점이다. 거해 스님을 비롯해 상좌부 불교국가에서 초기불교를 수학하고 온 대다수의 수행자들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비불설로 규정하고 신봉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거해 스님 또한 법회 때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등의 경전독송을 금지시키고 아미타불이나 관세음 같은 불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쳤다. 심지어 어떤 수행단체의 스님은 대승논사인 용수, 세친, 마명과 같은 보살들을 힌두교로부터 불교를 와해시키기 위해 들어 온 외도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인도에서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돌아 온 한 스님은 불성과 법신, 여래장 등은 모두 불설이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간화선을 비롯해 대승불교의 여러 수행법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대승불교의 수행법이나 수행의 결과는 부처님이 직접 실천하고 얻은 내용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초기불교 신봉자들이 대승불교의 교리에 대해 이와 같은 비판을 가하는 배경에는 대승불교의 경전이 후에 가공되었다는 견해 때문이다. 상좌부 불교의 초기경전만이 부처님의 진설이라는 사실을 들어 대승불교의 정통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 신봉자들이 대승불교에 가하는 비판은 한국불교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한국불교에 수행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순기능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한국불교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불자들은 상좌부 불교가 옳은 것인지 대승불교가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 가르침이 더 뛰어난 것인지 선택해야만 하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초기불교 신봉자들의 뜻대로 일정부분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간의 이런 논쟁은 초기불교 신봉자들에 의해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대승불교의 교리가 부처님의 직설과 멀어진 시대에 만들어진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의 경전에서는 초기불교를 소승이라 폄하하며 따르지 말라고 가르쳐왔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상좌부불교는 오랫동안 배척돼 왔다. 지금까지도 한국불교 최고의 위치에 계신 스님들이 초기불교의 위빠사나는 소승의 수행법으로 견성성불 할 수 없으니 오로지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어찌됐든 한국 불교는 앞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초기불교의 확산에 따라 대승불교의 위치가 많이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승불교가 초기불교를 소승이라 폄하하며 정통성에 균열을 낸 것처럼 대승불교 또한 초기불교의 공격으로 균열이 일어날 것이다. 이로 인한 불교내부의 이념과 신행적인 갈등은 갈수록 격화될 것이 확실하다.

물론 초기불교가 확산되는 것이 우려스럽거나 거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초기불교에 의해 가해지는 대승불교에 대한 비판은 우려스럽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원으로 하고 있으며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고 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보완과 융화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이야기를 전개해 볼 생각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28호 / 2014년 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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