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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종단개혁은 사부대중 결집해 이뤄낸 한국불교사 분기점

▲ 1994년 종단개혁운동은 종단 권력에 맞서 스님들과 재자불자들이 새로운 한국불교를 갈망하며 분연히 일어난 일대 사건이었다. 사진은 1994년 4월13일, 스님과 불자들이 개최한 범불교대회. 민족사 제공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개혁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는 그 시대 불교계가 대중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자각과 반성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불교교단의 치부를 도려낸 자정운동'에 따르면 근대 이전 불교개혁은 주로 결사(結社)의 형태로 나타났다. 고려시대 불교의 세속화를 혁신하고자 했던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의 ‘정혜결사’와 원묘국사 요세(1163~1245) 스님의 ‘백련결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눌 스님은 당시 왕실과 결탁해 세속화된 승단을 바로잡고자 수선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기복·미신 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불교를 척결하며 정법과 수행불교를 주창했다. 이를 위해 스님은 개경 보제사에서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열고 동지들을 규합해 결사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런 결사 운동은 결국 기득권층의 반발과 명확한 실천의 부족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 결과 한국불교계는 이후 500년 간 모진 핍박과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개항 이후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개인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한국불교계에는 수많은 개혁론이 등장했다. 1910년대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을 필두로 만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이 있었으며 1920년대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과 용성 스님의 대각교 운동이 새롭게 제기됐다. 또 1930년대에도 석전 스님의 ‘조선불교현대화론’과 박중빈의 ‘조선불교혁신론’ 등이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황성기, 이기영 등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불교개혁안들이 속속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안이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일각에서 부분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해도 불교계의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1950년대 ‘전통불교 회복’ ‘왜색불교 척결’을 기치로 이뤄졌던 불교정화운동은 일정정도의 성과를 가져왔다. 비구 승단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조계종단의 재정립 및 비구 승단으로서의 체제를 정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권력에 의존하거나 반불교적인 행태가 노출됐다. 급조된 비구승들의 대거 유입으로 승려의 질적 하락을 부추긴 점도 정화개혁 과정의 후유증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 촉발된 정화운동은 이후 전개과정에서 지나치게 정권에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1994년 한국불교계에는 또 한 번의 개혁물결이 휘몰아쳤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의현 스님의 3선 강행으로 시작된 종단개혁은 불교계의 ‘6·10민주항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종단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갈망하는 출재가자가 이뤄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94년 종단개혁은 오랜 기간 되풀이 돼온 종단의 구조적 모순을 척결하고자 비롯됐다. 특히 불교의 정치예속화와 총무원장의 권력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불교는 변화·개혁의 종교
이 시대도 개혁 과제 산적

불교 정치예속화 틀 깨고
교단 민주화·자주화 시도한
종단개혁 정신 회복 절실

엄정한 평가가 미래 자양분
이제 승자·패자 관점 벗어나
원점에서 냉철히 평가할 때
한국불교 새로운 도약 가능

 

불교의 정치예속화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시 의현 총무원장을 주축으로 한 종단 집행부의 정권과의 결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현 스님은 1987년 사회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고 전두환 정권이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4·13 호헌조치’에 대해 “고뇌에 찬 충정의 구국의지”라며 민망스러울 정도의 지지를 표명했다. ‘6·29선언’에 이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이번에는 ‘불자대통령’을 운운하며 노태우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그런가하면 19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를 밀다가 다시 김영삼 후보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보로 불교계 내부의 공분을 샀다. 여기에다 대표적인 정교유착형 비리 사건인 ‘상무대 비리의혹’에 의현 스님이 연루되면서 불교계를 정치권과 결탁한 비리 집단으로 내몰리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의현 스님이 종헌종법을 무시하고 총무원장 3선을 강행한 것도 종단 개혁의 분수령이 됐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이러한 독단을 좌시하지 않았다. 1980~90년대 민중불교운동과 사회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젊은 스님들이 개혁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불교의 혁신을 열망하는 재가불자들도 속속 동참하면서 철옹성 같았던 의현 총무원장 체제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설상가상으로 의현 스님이 자신의 3선 강행을 위해 공권력과 조직폭력배를 끌어들여 개혁세력에 무차별적으로 가한 폭력사태는 종단 내부에서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개혁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이를 시작으로 종단의 신진 개혁세력과 재가불자들은 범불교도대회와 승려대회를 열어 의현 스님을 압박했다. 사면초가에 직면한 의현 스님은 결국 총무원장을 사퇴하고 모든 종권을 개혁세력에게 이양했다.

종권을 이양 받은 개혁세력은 곧 종단의 낡은 법과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우선 총무원으로 일원화됐던 행정 체계를 총무원과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해 종무행정의 전문성을 갖도록 했다. 또 총무원장의 겸직금지 규정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입법과 행정, 사법 등 3권 분립 체제를 성문화해 종단의 권력이 특정인에 집중되지 않도록 했다. 더불어 수행종풍확립과 승려교육 강화를 위해 ‘선교육 후득도’ 제도를 도입, 4년간의 의무교육을 받은 스님에 한 해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자격규정을 마련했다. 종단 재정의 공영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모든 재정은 공개운영을 원칙으로 함을 종헌에 명문화했다. 사설사암의 종단 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삼보정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법도 마련하는 등 큰 성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1994년 종단개혁은 조계종의 행정과 교육, 포교 등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 이뤄낸 놀라운 성과였다. 그러나 당시 종단개혁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비록 현대적 종단 운영시스템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마련한 것은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개혁주체의 불교적 문제의식의 빈곤, 사전준비 부족,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풍토 조성 등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또 종권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비구니와 재가불자가 배제된 채 비구에게 종권이 집중되는 것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로부터 20년. 1994년 종단개혁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개혁’이 아니라 ‘사태’였다는 견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법보신문이 최근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퇴휴 스님)와 함께 전국 조계종 스님(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 24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1994년 종단개혁을 ‘성공했다’고 보는 의견은 31.5%인 반면 ‘실패했다’고 보는 답변이 32.8%로 오히려 더 많았다. 이는 1994년 종단개혁이 보여준 한계가 곧 오늘날 한국불교에 당면한 문제이자 새롭게 지향해야 할 개혁과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는 과거에 대한 직시로부터 출발한다. 엄정한 평가와 참회만이 새로운 미래의 자양분이다. 1994년 종단개혁을 밀어낸 자와 밀린 자의 관점이 아닌 원점에 두고 냉철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곧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29호 / 2014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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