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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전통불교미술대학 학장 푸레밧 스님

기자명 김형규

“한국은 몽골불교 부활의 모델”

한국내 몽골노동자 신행조직 구성 차 방한

“불교 미술계 전통불화의 명맥 약해진 듯”


골전통불교미술대학 학장 푸레밧(Purevbat·40·사진)을 5월 9일 조계사 경내 산중다원에서 친견했다. 몽골 스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처음인데다 소련 통치와 공산주의로 인해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몽골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는 위대한(?) 스님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터라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그러나 스님은 예상외로 젊었다. 체격 또한 상대편이 위축될 만큼 당당했고, 1936년 이후 완전히 파괴돼 버린 몽골불교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말끝마다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오랜 수행을 통해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기품이 향(香)처럼 풍겨났다. 스님은 연등축제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특히 “소수의 스님들이 많은 신도들을 무리 없이 이끌고 있는 한국불교의 모습에서 미래 몽골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고 밝혔다. 스님은 민주당 조성준 의원의 초청으로 방한해 5월 4일부터 12일까지 9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인가.

방한의 목적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한국불교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이번까지 한국을 3번째 방문했다. 특히 올해 1월 18일 한국 스님들의 도움으로 러시아어로 된 좬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좭을 현대 몽골어로 번역, 출판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1만 2000여명의 몽골노동자들이 서로 돕기 위한 자생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민주당 조성준 의원의 도움으로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재한 몽골노동자들만의 역사적인 봉축법회를 갖게 됐고 모임도 결성됐다. 또 조계사 주지 스님이 매주 몽골인 법회가 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몽골불교에 대해 소개를 해 달라.

몽골은 한때 남자 인구의 30%가 승려일 만큼 대단한 불교국가였다. 그러나 1937년 몽골이 공산화되면서 모든 불교 사원과 전적이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 이후 세계적인 비난이 일자 선전용으로 마구간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사원을 건립했는데, 현재 수도 울란바타르에 있는 ‘간단사’다. 그러나 이 간단사가 1990년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몽골이 민주화되면서 불교부흥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간단사에는 3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 아직 교단이 정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3000여명의 스님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스님이 되기 전에 유명한 화가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가 동기는.

출가 전에는 몽골 국립문화예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가 예술가로 활동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몽골을 대표해 미술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6년 간단사로 출가를 했다. 몽골의 전통미술을 공부하면서, 깊이 파고들수록 그 뿌리가 불교미술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 후 티베트 인도대사 바쿨라 린포체의 도움으로 인도로 유학해 달라이라마 전속화가인 상계예시, 규도밀교대학 교수 게쉬쌈텐, 티베트 도서관 라왕돈툽 스님들께 밀교 미술을 배웠으며, 1993년 몽골로 돌아와 간단사 내에 몽골전통불교미술대학을 세워 현재 학장을 맡고 있다.

△몽골전통불교미술대학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몽골불교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대대로 내려오던 불교미술의 맥도 끊겨 버렸다. 다행히 아직 몇 몇 노스님들이 남아있어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경전이나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만약 10년만 더 늦게 시작했다면 몽골 불교의 복원은 불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불교미술대학은 6년 과정이다. 그러나 6년 과정동안 배울 수 있는 것은 기초에 불과할 뿐이다. 불교미술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명상을 통해 깊은 수행이 되지 않는다면 불법의 심오한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교미술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불교미술 가운데 ‘단청’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여러 아시아 불교국가를 다녀봤지만 단청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없었다. 또 고려불화는 위대한 작품들이다. 이 불화들을 보면 당시 보시자와 제작자들이 얼마나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도 사진으로만 봤지만, 엄청난 법력과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 불교미술에 대해 평가한다면.

사찰을 다니며 벽화를 봤는데 너무 정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불화가)100%라면 30%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스런 말이지만 불자로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색채의 비율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색이 익지가 않았다.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맞춰야 할 일정한 비율이 있다. 고려불화는 이런 색채의 비율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맞추고 있는데, 현대 불화와 벽화는 이런 부분들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한국의 현대 불교 미술가에게 조언을 한다면.

불교 미술은 기교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소질도 있어야 하지만 따라야 할 일정한 규범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에 관한 것이다. 불교미술은 불법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교리에 대한 이해와 마음의 정화가 함께 돼 있어야 한다.

△몽골 불교가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몽골은 오랜 공산주의 통치를 끝내고 민족의 주체성을 새롭게 세워야하는 시점에 왔다. 그런데 기독교로 인해 몽골의 혼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점들 때문에 역으로 민족의 전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을 지배했던 모든 민족이 중국의 문화에 흡수돼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몽골은 전통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몽골의 가지고 있는 힘이고, 몽골 불교의 힘이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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