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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시아문(如是我聞)

대승은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한 노력

▲ 그림=김승연 화백

불교의 경전은 팔만사천가지라고 말할 만큼 많다. 그 많은 경전들은 한결같이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된다. 초기불교의 경전이나 대승불교의 경전이나 차이가 없다.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 당시부터 구전(口傳)의 형식으로 전해졌다.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그것을 암송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암송된 내용을 들은 그 사람 또한 들은 내용을 암송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형식이었다. 현재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은 수타니파타 4장에 나오는 ‘아타나아까’ 경이라 알려져 있다. 이 경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논의제일(論義第一)로 알려진 마하까자나 존자가 제자 소나 비구에게 암송해 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마하까자나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을 수 없게 된 소나 비구에게 ‘아타나아까’의 경을 암송해 주었는데 소나 비구가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후에 부처님 앞에서 다시 암송을 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매우 만족해하였다고 한다. 문헌학자들은 수타니파타 4장 그리고 뒤에 나오는 5장을 경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는다.

결집으로 형성된 소승 경전만
진정한 불설이라고 일부 주장

대승 경전 결집과 무관하지만
초기 경전 수용하며 교리 전개

경전 편찬의 시작은 결집(結集)으로부터 시작됐다. 결집이란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종합하고 교정하는 편집과정을 뜻한다. 교단 내에서 공식적인 회합을 통해 당시에 유통되었던 불설을 재점검한 뒤 만장일치로 승인하는 합법적인 정전화(正典化) 절차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결집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런 경전결집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난존자다. 아난존자는 1차 결집 때 대중들 앞에서 경전을 암송한 인물이다. 1차 결집은 라자가하 웨바라산 칠엽굴에서 진행되었다. 가섭존자의 주재 하에 모인 500명의 아라한들이 부처님 말씀을 함께 정리했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아난존자다. 아난존자는 1차 결집때 자격미달로 결집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다. 아라한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집에는 아라한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아난존자는 당시 수다원의 지위만 얻었다고 한다. 가섭존자는 아난존자가 아라한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책망하고 일주일 동안 수행을 완성하고 나서 결집에 참여 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아난존자는 굴 밖에서 좌선과 경행을 계속 하다가 일주일 되는 날 마침내 아라한이 되면서 극적으로 결집에 참여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집에 참여하게 된 아난존자는 가섭존자의 지시에 따라 부처님이 언제 누구에게 무슨 가르침을 설하였는지를 기억해 내며 500명의 아라한들 앞에서 이를 암송을 했다. 이때 아난존자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여시아문이다. 아난존자가 암송한 내용은 아라한들의 추인을 받아 부처님의 말씀(佛說)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사실 아난존자가 아라한이 됐든 안됐든 관계없이 부처님 말씀만 제대로 암송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아라한의 지위를 얻은 후 결집에 참여하라고 말했을까? 가섭존자를 비롯한 아라한들은 부처님 말씀을 편찬하는데 있어 기억에만 의존한 암송은 자칫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고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 말씀을 완벽하게 하기위해서는 아난존자가 기억에만 의존 할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체험적으로 일치된 상태에서 암송을 해야만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경전은 한 개인에게만 의존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난존자가 암송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지만 안으로는 500명이라는 깨달은 아라한들의 공통된 들음과 체득과 증명이 함께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경전이 암송의 결과를 통해 편찬되어졌을까? 그렇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결집은 총 여섯 차례 있었다. 시대에 따라 부처님의 말씀을 재정리하고 해석하고 유통하기 위해서 결집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섯 차례의 결집은 모두 일차 결집의 교리들을 그대로 전승하고 여기에 율(律)과 론(論)을 보충하는 차원이었다.

여기서 대승경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이견이 생기게 됐다. 대승경전들은 여섯 차례의 결집과는 무관하게 만들어졌다. 엄밀하게 말해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전들 가운데에서 아난존자의 영향권 속에 있는 경전들은 초기경전인 다섯종류의 니까야들 뿐이다. 초기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대승경전들을 비불설이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승경전들이 초기경전과 마찬가지로 여시아문이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제일 결집의 정신과는 무관한 것이고 또 여섯 차례의 결집의 과정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불설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이 초기경전을 따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대승경전들은 부처님의 말씀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까? 역설적이게도 대승에서는 오히려 초기경전만을 불설로 삼는 수행자들을 소승이라고 폄하한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을 진정한 불법의 계승자로 내세우고 있다. 경전 또한 대승의 경전이 부처님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 요의설(了義設) 임을 천명하고 있다.

대승에서는 결집을 통해 전승되어진 교리들이 불설임에는 틀림없지만 대승으로 이끌기 위한 과정상의 교리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설하고자 했던 궁극적 내용은 모두 대승경전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시아문의 뜻도 반드시 부처님의 입과 수행자의 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깨달음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승에서의 부처님은 항상 세상에 상주하는 분이다. 누구든지 수행을 하게 되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부처님에게 있어 중생을 위한 교화와 설법은 끝이 없다. 이는 시대와 장소의 한계를 떠나 여시아문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승경전은 초기경전의 형태와는 다르게 편찬되고 유포됐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대승경전이라 해도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전혀 훼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승의 여시아문이 아난존자를 중심으로 한 초기불교의 여시아문과 다르다해도 초기경전의 말씀을 그대로 수용한 채 교리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대승의 가르침은 초기불교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기불교를 극복하고 높은 차원의 단계로 오르기 위한 것이다. 어느 여시아문을 불설로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열반(涅槃)이라는 목표가 같고 부처님이라는 따르는 대상이 같다면 이는 반목과 비판의 차원이 아닌 상호이해와 포용의 자세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30호 / 2014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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