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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정방산 성불사 [하]

기자명 이학종
극락전 아미타 삼존불 미소에

중생의 아픔 씻은듯 사라져
















<사진설명>성불사 편을 연재하는 동안 성불사 부처님을 보고 싶다는 독자의 전화가 있었다. 독자의 요청에 따라 극락전의 아미타 삼존불 사진을 게재한다. 정교한 조각, 완벽한 비례, 온화한 펴정 등 조선불상의 진수를 보는 듯 하다.

성불사 극락전 안의 아미타 삼존불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18세기) 양식이다. 목조 불상인데 온화한 표정과 자비로운 미소의 표현이 일품이다. 두부와 몸체가 이루고 있는 비례도 안정돼있다. 빼어난 조각 솜씨와 안정감까지 뛰어난 것으로 보아 수작이 분명하다. 주불인 아미타불의 표정은 물론이고, 좌우보처인 대세지,관세음보살의 미소 또한 세태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중생들의 애환을 능히 안아줄만큼 아늑하다.

극락전 법당 안 한쪽 귀퉁이의 기둥에는 작은 범종을 달아 놓았는데, 예불의식에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차라리 큰 풍경이라 해야 좋을 듯싶다.

극락전 어간문을 통해 내다보는 5중탑과 청풍루, 정방산 능선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아름다운 장면이다. 절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소중하고 아름다워 왜 이곳이 명찰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전각을 울타리로 삼은 절 마당은 사대부집 안마당 정도의 크기인데 마당 양 편으로 18세기 양식의 당간지주가 마주 서 있다. 옛 선조들이 괘불을 걸어놓고 극락왕생을 염원했던 흔적들이다.



<사진설명>극락전 법당안 모서리 기둥에 걸린 작은 법종.


응진전 오백나한의 익살스런 표정에 웃음 절로

고승들 머물다간 운하당은 단아한 기품 자랑

<사진설명>응전전의 오백나한은 익살스런 표정이 단연 일품이다. 때마침 서산에 지는 햇빛 한줄기에 환히 모습을 드러낸 나한님들을 촬영했다.

성불사의 으뜸 자랑거리인 응진전은 건물의 건립연대나 독특한 건축양식도 양식이지만 그 안에 모신 오백나한상 만으로도 그 가치가 대단하다. 나한상들은 흙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표정이 저마다 익살스럽고 천연덕스럽다.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이곳의 나한들은 자연스럽게 경북 팔공산 거조암의 오백나한을 떠올리게 한다. 거조암 오백나한이야 이미 그 가치가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곳의 나한 역시 거조암에 비해 전혀 뒤질 것이 없다. 한 문화재전문가에게 나한상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니 표정이 부드럽고 재미있는 것이 거조암의 나한을 능가한다고 평한다. 다만 나한전 중앙에 모셔진 금동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살상은 되레 분위기를 해칠 만큼 수준이 떨어진다.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래의 작품인데, 점안까지 하지 않아 더 어색하다.

아무려나. 마침 서산에 지는 햇빛 한 줄기가 응진전 안 쪽까지 비추니, 햇빛에그 모습을 드러낸 나한님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환하게 미소 짓는다. 실제로 살아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듯한 착각을 일게 한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작품이 저렇게 사실적이고 생동적일 수 있다니! 금방이라도 나한님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법당 안을 뛰어다닐 것만 같다. 어느 조각품이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우리네 조상의 간절한 신심과 염원만이 이뤄낼 수 있는 기적이리라.

응진전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전각은 명부전이다. 기둥 상단부에 보를 지르고 보 사이에 귀면을 조각한 것이 눈길을 끈다. 전각 안쪽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조각 수법으로 볼 때 역시 근래에 조성된 작품이다. 단청 색깔도 최근의 것으로 조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청의 조잡함은 청풍루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 통로를 뺀 나머지에 마루를 깐 청풍루의 오른 편 마루 천정에 목어를 걸어 놓았는데, 이빨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돼 있어 물고기보다는 차라리 용이나 악어의 모습에 가깝다. 단아한 기운을 풍기는 운하당(雲霞堂)은 사찰의 전각이 아니라 서원의 공부채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현판의 뜻처럼 이곳에서는 수많은 고승들이 구름처럼 한 세상을 멋지게 노닐다가 떠나곤 했을 것이리라.

<사진설명>청풍루 안쪽에 걸린 목어. 입부분이 강조되어 물고기 보다는 악어나 통을 연상시킨다. 덧칠한 색깔이 조잡해 되레 볼쌍사납다.

어느덧 경내엔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햇살조차 막 지붕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아쉬움을 안고 우리 일행은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잊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살피고 또 살폈다. 다시 이곳을 찾아 참배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해보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승합차를 타고 정방산을 내려오다가 잠시 차를 멈췄다. 북한의 국화로 지정된 목란이 이곳 정방산에서 연원했다는 기념비가 지척에 있으니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법타 스님의 제안에 따라 서둘러 목란비와 목란을 향해 다가섰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비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수령이 수백 년은 돼 보이는 목란이 서 있다. 비석의 비문에는 ‘김일성 주석이 창덕학교 시절 이곳에서 본 아름다운 흰 꽃에 대해 항일투쟁을 하는 동안 이 꽃을 생각하며 조국을 그리워했으며 1964년 8월 19일 이곳을 다시 찾아와 이름을 목란이라고 정하고 인민의 슬기로운 기장을 담고 있는 목란을 국화로 정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동안 북한의 국화가 진달래인줄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목란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이부장님, 벌써 평양을 떠날 날이 다되어갑니다. 그래 그동안 많은 것을 보았습니까?”라며 조불련의 차금철 스님이 말을 건넨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평양으로 돌아가 평양 인근의 용악산 법운암을 참배하고 나면 순례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렇네요. 다음에 다시 오면 이번
에 보지 못한 사찰을 참배했으면 좋겠습니다. 좀더 여유 있는 일정이었으면 좋겠구요. 차 스님, 다시 초청해주실 거지요?” 차 스님은 대답대신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선뜻 약속을 할 수 없는 것이 남과 북의 냉엄한 현실이니 미소 이상 더 좋은 답변이 있으랴.

빡빡하게 진행된 일정에 맞춰 뛰어다니다 보니 피로가 몰려온다. 평양행 고속도로에 오른 승합차는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나는 시나브로 잠에 빠져들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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