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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벽과 거조암 영산전

기자명 김대벽


<사진설명> 거조암 영산전 내부


숨 쉬는 듯 생동하는 나뭇결


“당신이 본 우리 건축물 중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
이런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서 듣곤 한다. 내 업이 사진가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많은 집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그런 물음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선뜻 어디라고 답하지 않는다. “다 좋지요”라고 얼버무리면 “그래도 그 중에서…” 라며 집요하게 추궁해온다. 보통 우리 건축물은 제각기 자기류의 특징을 갖고 있어 어느 것이 좋다고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나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집을 꼽으라면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을 상위권에 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럼 대부분이 “그게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집과 내가 말한 집을 비교할 심산이었는데 거조암 영산전을 본 적이 없으니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 턱이 없다.


간결한 구조로 공간미 연출

좁은 창틈 빛이 나무색 살려

거조암은 절이 크지 않고 외진 곳에 있어 일부러 찾기 전에는 발길이 닿기 어렵다. 근자에는 교통이 사통팔달이 되어 편해졌지만 30여년 전 처음 거조암을 찾았을 때는 정말 외지고 외진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구에서 일박하고 시외버스로 하양에 가서 드물게 다니는 신령행 시골 버스를 기다려 타고 겨우 신령까지 갔다가 절을 물어 물어 잰 걸음으로 도착했으나 날이 저물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신령으로 나와 자고 이튼날 꼭두 새벽에 길을 나서서 겨우 촬영했던 곳이라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하다.

영산전은 앞면 7칸, 옆면 3칸의 맞배집이라 외형은 단조롭다. 21칸의 큰집에 출입문은 앞면 중앙 칸에 세 짝으로 짠 문 하나 뿐이고 살창으로 된 광창도 앞에 4짝 옆에 4짝 뿐 아주 폐쇄적인 것이 특징이다.

단조로운 외모에 비해 내부는 장엄하다. 배흘림이 역력한 훤출한 기둥이 두줄로 나열해 각기 대들보를 받고 있다. 대들보 위에는 종보를 생략하고 날렵하게 멋을 부린 높직한 마루 대공을 세워 솟을 합장하여 종도리를 받고 있다. 대담하고 멋진 가구(架構)법이다. 생략법으로 복잡한 것은 모두 제거하여 간결한 구조로 공간미를 최대한 연출한 탁월한 솜씨다.

영산전에는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 그대로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나무결은 늙지 않았다. 육백세, 아니 칠백세는 되었을까. 그러나 아직도 싱싱한 청년의 기상처럼 당당한 나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겨우 몇 개의 좁은 살창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이 넓은 공간을 온통 나무빛으로 충만시켜준다. 이런 느낌은 어느 집에서도 느낄 수 없는 영산전만의 자랑이다.

밝은 마당에서 전내로 들어서면 누구나 어둡다고 느끼지만 잠시 눈을 감고 어둠에 익숙해지면 신비하리만큼 고색창연한 나무결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넓은 공간이 마루에서 연등 천장까지 명암의 큰 차이 없이 고루 은은한 밝기로 채워졌다. 건물 구조상의 특징이다. 이런데서 우리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세계인에게 자랑할 우리 문화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김대벽/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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