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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수(法秀) 스님의 전생

기자명 성재헌

늙은 몸 바꿔 태어나 만행 꿈이룬 법수 스님

▲ 일러스트=이승윤

불교는 필연(必然)을 말하는 종교다. 우주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상 가운데 우연한 사건이란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하물며 긴 세월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이겠는가? 얽히고설킨 그 인연의 실타래가 아마 금생의 일만은 아니지 싶다.

송나라 때 일이다. 진주(秦州)의 농성(隴城), 죽포파(竹鋪坡) 앞쪽 철장령(鐵場嶺) 아래의 작은 산골마을에 신씨(辛氏) 부부가 살고 있었다. 깊은 밤, 갑자기 눈을 뜬 아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 신씨가 따라 일어나자 아내가 어리둥절한 눈길로 물었다.

“여보, 노스님 어디 가셨어요?”

“노스님이라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아내는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길게 숨을 골랐다.

“꿈이었네. 얼마나 생생한지 난 진짜인 줄 알았네.”

“무슨 꿈을 꿨는데?”

“어떤 노스님이 우리 집에 찾아와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귀찮다는 듯 자리에 눕는 남편의 어깨를 아내가 흔들었다.

“정말이에요. 맥적산(麥積山)에서 오셨다고 했어요.”

“알았어, 그만 자.”

등을 돌려버리는 남편을 더는 괴롭힐 수 없어 아내도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열 달 후, 신씨의 아내는 인물이 훤칠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신씨 내외는 시름이 늘어졌다. 젓을 물려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통 잠도 자지 않고 보채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집밖으로 나서면 울음이 조금은 잦아드는 탓에 신씨 아내는 밤낮없이 동네를 거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신씨 아내의 별명은 곧 ‘징징이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였다. 한 스님이 신씨의 집을 찾아왔다.

“계십니까?”

“네.”

여느 때처럼 징징이를 업고 마당을 돌던 아내가 사립문을 열었다.

“소승은 맥적산에서 왔습니다.”

맥적산이란 말에 신씨의 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기를 가졌을 때의 이상한 꿈이 떠올랐던 것이다. 등 뒤에서 자지러지는 아기를 어르며 아내가 물었다.

“맥적산에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발우를 내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탁발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스님은 징징이 엄마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외면하고 등 뒤의 아기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합장하며 청하였다.

“시주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게 아기를 한번만 보여주시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일에 징징이 엄마는 망설였다. 하지만 혹여 아기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산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직접 봐주시겠다니 고맙기도 했다.

“스님, 통 잠도 자지 않고 이렇게 밤낮없이 울기만 한답니다. 왜 이러는 거죠?”

징징이 엄마는 포대기를 풀러 스님에게 아기를 보였다. 그 순간 징징이 엄마는 깜짝 놀랐다. 누구 품에도 가지 않던 아기가 스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그 지독한 울음도 그치고 방긋 웃는 게 아닌가.

맥적산에서 왔다는 그 스님은 한술 더 떴다. 아기를 덥석 안더니, 한참을 껄껄거리고 웃다가 이러는 것이었다.

“스님, 약속 지켰습니다.”

저물녘, 신씨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 스님은 내외를 앞에 두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시주님, 부디 제 이야기를 헛소리라 생각진 마십시오. 저는 맥적산 응건사(應乾寺)에 머물고 있는 노(魯)씨라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 있었던 일입니다. 맥적산에 늘 ‘법화경(法華經)’을 독송하시던 노스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그 노스님은 한참 연상이신데도 불구하고 저를 친구처럼 대하셨습니다. 평생을 맥적산에서만 사셔서 그런지, 행각승으로 이곳저곳을 떠돈 제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노스님이 문득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나도 자네 따라 천하를 둘러보고 싶구먼. 이번 해제 철에는 나도 좀 데려가 주게.’

여행길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젊은 사람도 힘든 길인데 여든을 훌쩍 넘기신 분이 행각에 나서시겠다니,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노스님이 대뜸 역정을 내시는 겁니다.

‘왜 나랑 다니는 게 싫은가?’

그래서 말씀드렸지요.

‘스님처럼 훌륭한 분과 함께 다니는 게 왜 싫겠습니까?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노스님, 연세를 생각하셔야죠.’

‘같이 행각하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늙은이라는 것 하나 뿐인가?’

‘노스님, 젊은 사람도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지는 게 행각입니다. 스님 건강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노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씀이 없으셨지요. 그러다 형형한 눈빛으로 되물었답니다.

‘내가 자네보다 젊고 건강했다면 같이 행각에 나섰을 것이다 이거지?’

‘당연하지요, 노스님.’

‘약속할 수 있겠나?’

‘네?’

뭘 약속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스님의 눈빛은 단호했습니다.

‘내가 자네보다 젊고 건강하면 함께 행각에 나서겠다고 약속하겠냐 말이야.’

재차 까닭을 묻기엔 노스님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손을 꼭 잡고 다짐했습니다.

‘그럼요, 노스님.’

그러자 노스님이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훗날 죽포파 앞에 있는 철장령 아래로 나를 찾아오게.’

그리고는 곧장 뒤돌아 당신의 처소로 돌아가셨고, 다음날 노스님께서 열반하셨답니다. 그제야 저는 노스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요.”

그날 이후 응건사의 노화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씨네 집을 찾았고, 징징이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러다 세 살이 되자 응건사 노화상을 따라 집을 나섰고, 아들의 전생을 확인한 신씨 내외도 두 사람을 만류하지 않았다. 아이는 노화상을 따라 천하를 행각하며 교와 선을 두루 섭렵하였고, 훗날 운문종 천의 의회(天衣義懷)선사의 법을 이었으니, 그가 바로 원통 법수(圓通法秀)선사이시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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