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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의 겨울과 타는 봄

지난 겨울은 잦은 폭설로 인해 하얀 적막에 갇혀 한 철을 보낸 셈이다. 그렇게도 많은 양의 눈이 쏟아진 것은 몇 십년 만의 일인 것 같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남설악 한계령 주전계곡은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또 쌓이고 쌓여 요사채의 낡은 함석지붕이 행여 무너지지나 않을까 싶어 여간 걱정스러운게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눈더미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지붕을 타고 내려오다가 얼어붙었다. 하얀 처마 끝에 동굴 종유석같은 고드름이 매달려 겨울이 빚어낸 투명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눈이 쌓인 한계령엔 차량도 인적도 다 끊어지고 나는 눈 속에서 쪽문 하나 밀치며 법당을 들락거리면서 눈사람처럼 살았다.

깊은 산중에 혼자서 어떻게 사느냐고 전화로 물어오는 불자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 절에 올 때도 책 몇권 달랑 들고 빈손으로 오지 않았던가. 걸림없는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산중 납자의 몸이 혼자 살지 않고 또 누구와 함께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런데 긴 겨울을 넘기고 나니 다시 세상은 오랜 가뭄 때문에 목이 타들어가고 있다. 물 한 방울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들의 무관심을 뒤돌아볼 일이다. 무명(無明)에 끌려 다니느라 자연이 베풀어 준었던 소중한 물을 고맙게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마침 KBS 방송국에서 가뭄에 고통받는 농촌에 양수기 보내기 성금을 모금하는 현장을 보고 아직은 살 만한 세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성금 모금함 앞에 줄을 이은 국민들의 따뜻한 성의에 어찌 하늘인들 감동하지 않을 것인가.

사흘 전에는 한밤에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잠을 설쳤다. 며칠 전에 내려준 단비로 채마밭에 기지개를 켜는 상추랑 쑥갓의 떡잎들이 어찌나 예쁜지 차마 때묻은 손으로는 만져볼 수조차 없었다.

생각하면 아직 대지는 목이 타고 농사에는 턱없이 물이 모자라 온 국민이 땅을 파헤치고 물줄기를 찾느라 밤낮을 가릴 줄 모른다.

이른 아침 어둠을 걷어내는 점봉산을 시름없이 바라보니 그 유명한 소치의 수목화 한 폭이 내 마음에 안긴다.

지금 오색에는 감로수처럼 고마운 비가 뿌리고 있다. 하루 속히 자비의 비가 흠뻑 내려 우리의 목마른 시름을 적셔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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