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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평양 법운암[상]

기자명 이학종

김구 선생 은신했던‘평양의 금강’

평양 내 대표 명승지…관광객‘구름’

혁명투사들이 즐겨찾는 성소‘자부’

산신-칠성각 건재…민간 불교 전승


북한 방문 마지막 일정을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오늘의 일정은 법운암을 참배하고 조선불교도연맹 청사를 방문,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막상 내일이면 평양을 떠나게 된다니 아쉬움이 남는다. 때론 힘겹고 지친 시간이었지만 시나브로 평양과 북한의 불교유적에 정이 든 모양이다.

평양에 소재한 사찰이고 절 앞까지 차량이 닿는 곳이니 오늘의 일정은 수월한 편이다. 호텔을 나서 만경대 구역 용악산까지 가는 동안 차창을 통해 평양시내를 내다보았다. 여러 차례 보아온, 그래서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지만 막상 떠날 때가 가까워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간선도로의 교차로마다 서서 수신호로 차량을 소통시키는 여성 교통원들은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고운지…. 일행들도 같은 심경인지 연신 카메라로 그 모습을 잡기에 정신이 없다.

<사진설명>법운암의 원경. 큰 산은 아니지만 바윗돌이 힘차게 사늘로 놋아 오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암자 뒷쪽으로 난 바위가 인상적인데 가까이서 보면 화산석처럼 푸석푸석한 느낌을 준다.

순화강 건너 용악산으로

외각으로 접어드니 평양인데도 한산하다. 순화강을 따라 가다가 언덕배기 같은 산을 지나 한참을 더 달려가니 ‘룡악산’이란 푯말이 눈에 띈다. 가는 도중 산 아래 쪽에 제법 큰 건물이 서 있다. 조불련 관계자에 물으니, 경관이 빼어난 용악산 초입의 이 건물은 매년 4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학생 수련장(야영소)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1주일에 1000여명 이상이 참석한다니 북한의 대표적인 청년학생 수련소인 셈이다. 용악산은 또 평양 인근에 있으면서도 김일성 주석이 평양의 금강이라고 경탄했을 만큼 경치가 좋아 봄이나 여름철에는 평양의 시민들과 탐방객으로 붐빈다.

<사진설명>용악산 법운암 전경. 본전 건물 앞으로 펼쳐진 경관이 보통의 수준을 넘는다. 본전 앞 마당은 이 절이 고구려 창건 사찰임을 감안, 고구려 양식의 축성법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법운암은 원래 평양 대동강 옆 모란봉에 있었던 평양제일 가람 영명사(한국전쟁 당시 전소)의 부속암자였다. 용악산(해발 300미터) 중턱 해발 165미터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만경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해 있다. 느낌상으로는 해발 500미터쯤 돼 보이지만 이곳에 사는 분들이 165미터라고 하니 그대로 믿을 수밖에. 용악산은 또 김구 선생이 만주로 건너가기 직전 승려생활을 하며 2년간(1900-1902년)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때려 죽이고 마곡사에서 출가해 은신하다가 만주로 건너가지 전에 이곳에서 2년 동안 스님으로 살았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도 방문 격찬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은 1974년 김일성 주석이 방문 “여기가 평양의 금강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곳이다. 훗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에 들러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일성 부자의 방문은 굉장한 영광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법운암이 비록 작은 암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나무가 많이 줄었지만 과거 용악산은 수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김구 선생이 승려생활을 하며 은신하기에 적격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용악산 자락에서는 특히 ‘구호나무’라고 불리는 수종 60년 이상의 나무가많이 있는데, 구호나무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하던 혁명투사들이 나무에 각종 구호를 적어 놓아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한다.

법운암 주지는 법암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인데, 전각과 유물을 소개하면서 법운암 자랑으로 여념이 없다. 과거나 현재의 혁명투사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이곳 법운암이라며 이인모 옹을 비롯한 비전향 장기수들이 이곳에 와서 법당 위의 고목을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문익환 목사나 임수경 씨 등 남쪽의 민주인사들도 이 절을 방문, 참배했다는 것이다. 법암 스님은 또 법운암의 현판이 김리인(병자년)의 글씨로 적어도 400년 이상 된 것이라고 소개한다.

<사진설명>법운암 주지 법담스님. 머리를 기른 모습이지만 노 스님의 느낌을 줄 만큼 편안한 얼굴이다. 법운암을 오랫동안 지켜온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님은 북한불교의 거목으로 알려진 황화두 스님을 은사로 불문에 들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앞니가 모두 빠져 실제 나이보다 더 연장자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잘 생긴 얼굴이다.


보현사 주지 스님 이후 만난 가장 고령의 스님으로 보여, 출가 이력을 물으니 북한 불교계의 거목으로 알려진 홍화두 스님의 상좌로 불문에 들었다고 한다. 스님의 인상이 좋고 표정이 자애로워 법납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아미타불이라고 소개하는 등 불교에 관한 상식은 경륜만큼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토속 신앙 흔적 남아

법운암은 북한의 사찰 중 유일하게 산신각이 온전하게 보전된 곳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칠성각과 독성각도 남아 있어 법운암이 평양 지역 불자들의 신앙적 귀의처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민간신앙의 흔적을 가장 많이 남긴 절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법운암은 행정구역 상으로 평양에 소속돼 있으나 제법 가파른 산세에 앞으로 순화강이 흐르고, 멀리 평양을 굽어보고 있어 깊은 산중의 절을 방불케 한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보유적 제13호로 지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도 어쩌면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한 본사인 평양 영명사가 전소됨으로써 고려시기 창건된 고찰로서의 가치가 한층 격상된 것도 국보유적으로 지정된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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