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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기자명 이미령

‘생물학적 아버지’의 피보다 끈끈했던 인연 그리고 양심

‘허삼관 매혈기’
위화
최용만 옮김 / 푸른숲

지난 6월4일 치른 지방선거는 후보자 본인만큼이나 그 가족이 아주 흥미진진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느 서울시 교육감 후보자의 딸이 올린 글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요. 그녀의 글에서 아주 인상적인 단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말이었습니다.

낳기만 했지 돌보지 않은 친부에 대한 원망 섞인 그 표현을 접하는 순간 중국 작가 위화(余華, 1960~ )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 등장하는 아비와 아들이 떠올랐습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이 요즘처럼 개방되기 한참 전, 마오쩌둥의 어록이 큰 힘을 발하고, 수많은 인민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동으로 서로, 공장으로 농촌으로 도시로 이불보따리를 짊어지고 정신없이 이합집산하던 때가 시대적 배경입니다.

가진 것 없는 주인공 허삼관
피 뽑아 판 돈으로 결혼하고
세 아들 얻어 행복해 했지만
큰아들은 아내 옛 애인 핏줄
기근에 매혈로 연명하면서도
남의 자식에게 국수 사먹여

“사람은 양심 있어야 한다”며
친부에게 도리 하도록 가르쳐

피 한방울 안 섞인 자식 위해
자신의 피 뽑아 키운 아버지
생물학적 관계보다 진한 인연
참다운 부모 자식 의미 보여 

주인공 허삼관. 이 사내는 가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니 장가도 들어야겠기에 자신의 피를 팔아서 그 돈으로 평소 눈여겨 본 처자 허옥란에게 청혼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5년 동안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셋이나 낳습니다. 옥란이 남편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아들을 하나씩 낳을 때마다 몰래 히죽 웃으며 좋아했던 허삼관은 그 심정을 담아서 큰 아들의 이름을 일락(一樂), 둘째 아들은 이락(二樂), 셋째 아들은 삼락(三樂)이라 지었습니다.

아들 셋은 다 착했습니다. 특히 큰아들 일락은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랐고,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으며 동생들을 잘 챙겼습니다. 그런데 일락이 자랄수록 영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가 되어간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큰아들의 얼굴에서 아내의 옛 애인 하소용의 인상이 자꾸 스며 나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댔고 마침내 허삼관에게 아주 영예로운(?)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자라 대가리”

이 말은 중국에서 남자에게 붙일 수 있는 최악의 욕이라고 번역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9년 세월을 그렇게 물고 빨고 힘들게 돈을 벌어서 키워온 일락이는 아내가 결혼하기 전 첫 번째 구혼자였던 사내 하소용과 딱 하룻밤을 잤을 때 잉태된 남의 아이였던 것입니다.

피를 팔아 이룬 가정이었는데 첫 아이가 실은 남의 자식이었다…!!!

그 배신감…. 말해 뭣할까요?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허삼관은 너무나도 허탈하고 화가 난 나머지 외도까지 하고 맙니다. 남편의 눈치를 보던 아내 옥란은 일락의 친부를 찾아가지만 지금처럼 유전자 검사가 있지도 않던 시절이라 그는 냉정하게 도리질합니다. 허삼관 집안에 쪽박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힘들어 하는 이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일락입니다. 그가 철썩 같이 믿었던, 그토록 좋아했던 아버지를 더 이상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락이는 곧 죽어도 ‘내 아버지는 허삼관’이라고 믿습니다. 허삼관의 푸근한 인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소용의 아들 하일락이 아니라 허삼관의 아들 허일락이라고 자꾸만 되뇝니다.
하지만 이런 외침도 소용없게 되었으니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해서 중국 전역이 기근으로 몸살을 앓던 시절에 일은 벌어집니다.

수많은 인민이 멀건 죽으로만 연명하던 시절. 허삼관의 집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온 식구가 옥수수죽만 마셔댄 날이 57일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냉수 두 대접을 들이마신 뒤 다시 피를 팔러 나섭니다. 그리하여 그 돈으로 모처럼 온 식구가 승리반점에 가서 맛난 국수를 먹기로 합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가장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건 피 밖에 없었고, 소설 제목에 ‘매혈(賣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온 식구가 그나마 외출복이란 걸 갖춰 입고 승리반점으로 향하는데 딱 걸리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일락입니다. 제 아버지한테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내 아버지는 허삼관”이라며 버티는 녀석입니다. 하지만 제 생물학적 아비도 나 몰라라 하는 녀석에게 자기 피를 판 돈으로 요리를 먹이는 자라대가리 노릇을 더 이상은 할 수 없었던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푼돈을 쥐어주며 고구마를 사먹으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일락이는 빕니다.

“아버지, 저도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거 다 알아요. 이락이하고 삼락이만 친아들이구요. 그치만 나 오늘 딱 하루만 아버지 친아들 시켜주면 안 돼요? 나도 국수 먹게 해주세요, 네?”

하지만 허삼관은 냉정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결국 주먹크기만도 안 되는 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빈 집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이루던 일락이는 식구들이 갔을 요리집을 향해 뛰어갑니다. 설마 10년을 아버지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이 기근의 시절에 내게 국수 한 그릇 사주지 않으랴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은 어긋났고, 터덜터덜 돌아온 일락이는 의붓아버지 허삼관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정하지요.

“그래, 난 당신 친아들이 아니야. 당신 역시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구.”

다음 날 아침 일락이는 친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생물학적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겠노라고 다짐한 것이지요. 하지만 친아버지는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두 아버지에게 쫓겨난 일락이는 허삼관의 집으로도 오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며 외칩니다.

“누가 제게 국수 한 그릇만 사주세요, 네? 그럼 제가 아들이 되어드릴게요.”

허삼관의 귀에 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왕 그렇게 된 것, 그러다 제 친아버지에게 가겠지 싶어서 애써 모른 척하다 결국 해질 무렵 남의 집 대문 앞에 쭈그려서 울고 있는 일락이를 찾아냅니다.

“왜 돌아왔어? 다시 나가. 나가서 아주 안 돌아오면 딱 좋겠다.”

반가운 마음 반, 친부 찾아 집 나간 데 대한 서운한 마음 반에 허삼관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어린 아들에게 퍼붓다가 등을 내줍니다.

“자, 업혀라.”

아들을 들춰 업고는 모진 욕을 퍼붓습니다.

‘배은망덕하게시리 11년이나 거두어 주었건만 내가 결국은 계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지? 내생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봐라.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키겠다…’

하지만 일락이 귀에 아버지의 욕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 멀리 승리반점의 불빛이 환하게 보였고 그는 조심스레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갑자기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래.”

친자식도 내다 버릴 정도로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허삼관은 일락이를 거두어들입니다. 그런데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요? 생물학적 아버지 하소용에게 아들이 그토록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올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인데, 식물인간이 된 환자의 아들이 지붕에 올라가 아버지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면 저승으로 떠나가려던 영혼이 그 목소리를 듣고 돌아와 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고 점쟁이가 조언을 한 것입니다.

그토록 부인하던 아들 일락이가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부인은 일락이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모질게 욕하고 모욕을 주며 쫓아내던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지요. 일락이와 그의 어머니는 당연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허삼관은 달랐습니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혼을 불러들이라고 일락이를 보냅니다. 낳아준 이에 대한 의무는 다하라는 것이지요. 가기 싫다는 아들을 그는 이렇게 타이릅니다.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해 두거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에게 뭘 해 줄 거란 기대 안 한다. 다만 나중에 (중략)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내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친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 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친아버지 이름을 목 놓아 부르게 시킵니다. 높은 지붕 위가 무섭고, 자기를 부정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밉고, 행여 허삼관이 자기를 다시 버릴까 두려워 눈물범벅이 된 일락이는 지붕 위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고, 결국 허삼관은 동네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외칩니다.

“봤지, 이제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칼로 베어 버릴 테요.”

중국소설을 읽으면 알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서양 정서에 물들지 않은, 동양 민중들이 지니고 있는 날것의 정서가 거칠지만 지독하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을 위해 제 몸의 피를 뽑아 팔아서 키워내는 아버지 허삼관. 피를 팔아 국수를 사 먹이고 양심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가 아닐까요? 피로 맺어진 생물학적 아버지보다 더 진한 인연입니다. 부모자식 관계는 그래야 옳지 싶습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50호 / 2014년 6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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