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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호계위원과 승가의 평등성

기자명 옥복연
  • 법보시론
  • 입력 2014.07.07 15:31
  • 수정 2014.07.07 15:32
  • 댓글 0

제198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비구니 스님도 호계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종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1962년 조계종단 성립 이래 5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비구니 호계위원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출가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구니승가의 종단 내 위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최초의 법안보다 매우 후퇴한 것이다. 최초의 법안은 기존의 초심호계위원 7명과 재심호계위원 9명에서, 비구니스님 2명을 추가해 각각 9명과 11명으로 늘렸다. 즉 비구 호계위원 자리를 비구니 스님에게 내준 것이 아니라, 인원수를 늘려서 그 늘어난 숫자를 비구니 스님에게 할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이 비구 스님의 반대에 부딪히자 비구니 스님은 초심호계위원만 참여하는 것으로 양보했고, 그 역할 또한 비구니 스님과 관련된 사안만 참여하도록 스스로 축소했다. 이처럼 매우 제한된 내용의 개정안이었지만, 삼수 끝에 겨우 통과된 것이다.
 
이 개정안의 통과 과정에서 일부 비구 종회의원들의 발언 내용들은 현재 종단 지도부의 승가 내 평등에 대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비구는 한 번도 비구니를 무시한 적이 없다.” 라거나, “왜 비구들이 비구니들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가며,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가?”라며, “언론이나 여성단체에서 비구 스님들이 비구니를 차별한다고 비난하는 책임이 비구니 스님에 있으니 사과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단의 입법·사법·행정기관의 지도부는 모두 ‘비구’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구니를 차별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율장’을 제시했다. 그런데 율장에는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는 각각 자치적으로 운영되므로 비구니는 비구니가 갈마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음은 종단 내 비구 율사스님들도 잘 알고 있다. 율장이 비구니 스님의 차별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호계위원은 사회적으로 보면 판사와 유사한데, 종단에서 비구니 호계위원이 이제야 등장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늦은 감이 있다. 대사회적으로 볼 때 1954년 한국 최초의 여성판사가 등장했고, 2003년 여성법무부장관에 이어 2004년 최초의 여성대법관이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종단법은 사회법보다 더 높은 도덕적 가치기준을 제시하면서 종도들을 이끌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부승가의 한 축인 비구니 스님을 종법으로 배제한 채 “율장과 청규, 법리에 밝은 비구”만을 호계위원으로 인정해 온 것은 평등을 실현해 온 사회법보다 한참 뒤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헌법의 기본정신이며, 부당한 차별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평등’의 개념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회와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성이 구현되도록 확대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는 남성이 다수인 조직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해서 빠른 시일 내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도 평등성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물며 비구니에 의한 비구니 갈마는 정당한 권리이자,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기초적인 평등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구니 승가가 초심호계위원이라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비구 승가와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만으로는 승가 내 평등성을 확보할 수 없다. 수행과 교화를 위한 종단조직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당한 차별을 거부할 수 있고, 평등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 노력을 할 때만이 붓다께서 부여한 비구니승가의 권리를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장 byok2003@hanmail.net
 
[1252호 / 2014년 7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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