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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부산 범어사 일주문

진과 속 경계 씻어내는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

▲ 범어사 일주문은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와 의장미(意匠美)는 물론 사찰 일주문으로서 기능적 가치까지, 건축의 삼박자를 잘 갖추고 있어 일주문 중에서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담과 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고학을 원용해 보면 적어도 청동기부턴 주거지에 이런 담과 문의 시설이 발견된다고 한다. 담과 문은 둘 다 외부와의 격리를 의미한다. 담장이야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외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고, 문은 나가고 들어가는 출입을 목적으로 하지만, 안과 밖을 구분하거나 차단하는 목적이 더 강한 것 같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물론 사전적(辭典的)이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야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이 문이 불교의 터울 안에 들어오면 여기에 좀 더 철학적인 뜻이 담기게 된다.

일주문·불이문 ‘하나’ 의미
잠금장치 없는 소통 자리
1614년 지어 1694년 중창

2006년 보물 1461호 승격
점잖은 맞배지붕 양식 특징
구성 부재들 적절한 배치로
안정성과 견고성도 갖추어

불교에서는 세상은 참과 거짓, 다시 말해서 진(眞)과 속(俗)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진속이 문에 들어와서 서로 하나가 된다고 본다. 이른바 ‘진속의 경계를 씻어내는 곳’이 바로 문이라고 말한다. 자기와 남을 구분하고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소통의 자리가 문이라니, 얼마나 멋있고 상쾌한 역설인가?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절에는 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진과 속이 하나로 되기 위해, 다시 말해서 더러움과 거짓이 깨끗해지고 참이 되기 위한 장치로 여러 번의 통과의례를 둔 것이다.

물론 절도 이 세상에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니 오롯이 세속을 내려다볼 수만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세속과 마주하는 경계가 없을 수 없다. 다만 절의 문은 ‘잠금’이 없다는 점에서 세간의 문과는 사뭇 그 근본부터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절의 문들은 기둥과 천장은 있지만 문짝을 달지 않았다. 일주문(一柱門)이 그렇고 불이문(不二門)이 또 그렇다. 일주문이나 불이문은 모두 ‘하나’를 뜻한다.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인 문이라는 뜻이고 불이문은 세상의 진리란 둘이 아닌 하나임을 말한다. 그런데 일주문을 얘기할 때 한 가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의미가 있다. 기둥이 하나라고 하는데 사실은 앞에서 보면 기둥이 양쪽으로 하나씩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둘이 된다. 보물로 지정된 범어사 일주문은 기둥이 일렬로 4개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라고 하는가? 기둥 하나로 어떻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을 수 있는가?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의문이다. 이에 대한 물리적인 설명이 없으면 이 좋은 뜻도 허황하게 느껴질 수 있다.

▲ 하나의 기둥을 의미하는 일주문은 앞이 아닌 옆에서 봤을 때를 말한다. 범어사 일주문 측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둥이 하나라는 건 옆에서 보았을 때를 말한다. 사물을 꼭 앞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 때론 옆이나 뒤에서 볼 때 문득 깨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일주문이 바로 그런 경우다. 또 하나 일주문은 ‘一柱門’ 편액 말고도 범어사 일주문처럼 ‘조계문(曹溪門)’ 등 다른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린 경우도 많다. 그것은 일주문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절에서 가장 앞에 있는 문을 일주문이라 통칭하고, 여기에 다른 고유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장흥 보림사 일주문에 ‘외호문(外護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 참 많은 아름다운 일주문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 하나를 들라 하면 아마도 범어사 일주문일 것 같다. 이 문은 1972년에 부산시 유형문화재 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에 보물 1461호로 승격되었다. 건축문화재로서의 가치와 역사성이 재인식된 것이다. 처음 부산시에서 지정할 때는 이름도 ‘범어사 일주문’이었다가 보물로 승격되면서는 ‘범어사 조계문’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처마 아래 ‘조계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서 그렇게 바꿔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주문의 역할을 하면서 이렇게 다른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이름이 본질을 규정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문은 1614년에 지었다고 전한다. 정확히 400년 전에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신을 못하다가, 1993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측 조사하면서 문의 중앙 종도리에서 발견된 묵서(墨書)에 의해 1694년에 중창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종도리’란 ‘용마루의 밑에 서까래가 얹히게 된 도리(들보와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는 나무)’를 뜻한다. 또 범어사의 조선시대 기록으로 ‘범어사 조계문 중창 양문록(梵魚寺曺溪門重刱樑門錄, 1718년)’과 ‘범어사 대웅전 비로전 불상 향적전 석정 조계문 석주 사계석제 개석통기(梵魚寺大雄殿佛像毘盧殿佛像香積殿石井曺溪門石柱四階石梯盖石桶記, 1720년)’가 있는데 이를 통해 지금의 문이 1718년에 중창하고 2년 뒤에 중수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범어사 조계문 중수상량문(梵魚寺曹溪門重修上樑文, 1841년)’에도 1841년에도 수리를 했다고 나온다.

범어사 일주문은 여느 일주문에 비해 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 일주문은 초석 위에 둥근 모습의 나무 기둥 2주를 세운 것이 보통의 모습인데, 이 문은 나무 기둥 대신에 ‘적당히’ 치석한 둥글고 긴 돌기둥 4개를 먼저 땅 위에 얹고 그 위에 다시 짧은 나무기둥을 얹어 3칸으로 구성한 것이 색다르다. 돌기둥도 두부 잘라 놓은 것처럼 단정하고 치밀하게 깎은 것이 아니라 돌 쫀 자국이 엉기성기 보이는 게 분명 매끈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외려 이런 것이 인간적인 친근함을 주고 좀 더 푸근함 느낌을 갖도록 하니 미술이란 한 마디로 이렇게 해야 아름다운 것이다 하고 정의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야 이런 다양성과 복합성이야말로 미술사의 매력이라고 느끼기는 하지만!

이 일주문의 또 다른 성취는 지붕에 있다. 화려한 팔작지붕 대신에 수수하고 점잖은 맞배지붕인데, 이 맞배지붕이 목조 건축 용어로 말해서 다포계 공포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 색다른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포(栱包)는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조립 부분인데, 이 공포가 기둥의 위쪽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 그러니까 기둥이 없는 곳에도 배치되는 게 다포(多包) 형식이다. 보통 다포는 양쪽으로 날렵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한 팔작지붕에 놓이는 게 보통인데 범어사 일주문은 다포면서도 굳이 맞배지붕을 고수하고 있다. 이 문 앞에 서성이는 사람을 어서 들어오라고 맞이하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주인장의 따스한 웃음을 이 지붕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주문이 정서(情緖) 면에서만 탁월한 성취를 이룬 건 아니다. 이런 독특한 건축기법을 선뵈면서도 건축물로서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요소인 안정성과 견고성 역시 뛰어난 작품이 바로 이 범어사 일주문이다. 모든 구성 부재들이 적절하게 배치·결구되어 구조적으로 안정된 조형성이 입증되어 있다. 한 마디로 해서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 돋보이는 의장미(意匠美) 뿐만 아니라 사찰의 일주문으로서 기능적 가치까지, 건축의 삼박자를 잘 갖추고 있어 일주문 중에서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문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이런 면들이 다른 일주문보다 두드러지게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주문은 절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사실 절의 영역은 작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세워두고 여기서부터 절의 영역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대표적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나 경주 분황사 같은 고찰에는 절 입구쯤에 커다란 돌기둥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지주(支柱)다. 그리고 이 두 돌기둥 사이에 높다란 당간(幢竿)을 세우고 거기에 번(幡)을 꽂았다. 번은 깃발의 일종으로 종파에 따라 색깔이나 형태가 조금씩 달랐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한편으론 이것을 걸어둠으로써 곧 여기에 사찰이 있다는 표식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고려 중기 이후에는 당간지주가 사라진다. 이런 현상은 당간지주를 대신하는 다른 어떤 게 나타났다는 의미가 된 텐데, 바로 그게 문일 거라고 생각된다. 문이 나타났다는 것은 공간이 그만큼 뚜렷하고 정확하게 나눌 필요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이야 측량이 발달해서 다른 지역과의 경계를 그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기술이 없었으니 다른 방법으로 구역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당간지주였고, 나중에는 일주문이나 불이문이라는 편액이 붙은 문을 세우고 여기부터 한 절의 경역을 지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절에는 일주문 말고도 여러 다른 문들이 있다. 유교의 사당이나 궁궐 등 각종 건축 공간이 있지만 이렇게 ‘문의 퍼레이드’가 펼쳐진 곳은 절밖에는 없다. 일주문을 지나도 금당까지 가는 길 도중에 여러 다른 문들이 있어서 저마다 절을 찾아온 사람들을 반긴다. 이런 배치야말로 우리나라 산사(山寺)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문의 종류도 금강문(金剛門)·인왕문(仁王門)·천왕문(天王門)처럼 불계(佛界)를 외호하는 신중(神衆)을 주인공으로 세운 문이 있는가 하면, 가야산 해인사의 봉황문(鳳凰門) 같이 불교의 상서로운 동물을 주제로 한 문도 있다. 장흥 보림사 외호문(外護門)은 사찰 문의 핵심 기능을 담은 이름이다. 뿐인가, 도갑사 해탈문(解脫門)이나 부석사 안양문(安養門)처럼 불교 궁극의 목표를 모토로 한 문도 있다. 춘천 청평사 회전문(廻轉門)은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가슴 시린 오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산사로 가는 길에는 이런 문들이 차례로 순례자들을 맞으며 그 문에 걸맞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자, 이제 절을 찾아 가거들랑 문도 한 번 되돌아보자. 무심히 드나들던 마음에 새로운 감흥이 일지도 모른다.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1252호 / 2014년 7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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