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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문화사업단, 청년출가학교 회향

“상처는 장맛비…다시 비 오면 희망우산 쓰고 걸을 뿐이죠”

▲ 세상 어디서나 비는 내린다. 누구나에게 마음에 비는 내린다. 누군가 손 내밀어 우산을 함께 쓰며 빗속을 웃으며 걸을 수도 있다. 비그치면 우산은 접어야 하는 법. 청춘들은 인생에 닥칠 다음 비 소식에 각자 우산을 펼치는 법을 배우며 웃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며 일반 공부와 다른게 없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했어요. 출가학교에 와서보니 행자들이 불교에 대한 관심이 의외로 많아 놀랐어요. 불교학을 공부하는데 책임감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7월5일 미황사에서 만난 청년출가학교에 참가한 가람 행자가 마음을 털어놨다. 이곳에 오기 전 공부나 미래에 대한 고민의 시기를 보내다 학교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보고 '이거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여행하듯 나를 돌아본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행자생활을 하다보니 같은 연령대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대화 속에 서로를 위로하며 나 스스로도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젊은 날을 향한 여행에 첫 발을 내디딘 가람 행자의 눈이 반짝였다.
 
6월28일~7월6일 해남 미황사서
20대 청년 39명 참가해 마음출가
‘희망’ 주제로 어둔 맘에 등불 켜
지도법사 스님 6명 상주하며 소통
 
예불·절·명사특강 등 힐링 법석
일상 복귀 전 남녀행자 2명 삭발도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진화 스님)이 6월28일~7월6일 해남 미황사에서 개최한 세 번째 출가학교는 20대 청년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희망’을 주제로 한 청년출가학교에서 20년 넘게 세상에 얽매여 살던 자신을 내려놓고 가슴 속에 희망 등불을 켜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3기 청년출가학교에서는 39명의 청년들이 함께했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은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장기 휴가를 낸 직장인도 여럿 있었다. 이번엔 지난해보다 지도법사가 늘어 6명의 스님들이 함께했다. 지난 두 차례의 경험으로 마음을 나누는 대화와 상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학교장 법인 스님을 비롯해 미황사 주지 금강, 울산 해남사 주지 만초, 불교미래사회연구소장 가섭, 교육아사리 연구원이자 불교방송 라디오 ‘아침풍경’ 진행자 원영,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재마 스님이 청년들의 멘토로 나섰다. 스님들은 상담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 청년들이 마음출가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기위해 개교 몇 달 전부터 대화와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그램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산세가 호방하면서도 아늑한 달마산 속 산사에서 일주일간 행자생활을 하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회향을 하루 남겨두고 찾은 미황사에서 행자들은 함동균 교수와 ‘청춘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춘은 돌멩이다. 여기저기 닳고 깎이고 어디든 굴러가지만 결국 이 모든 게 다듬어지는 시간이니까.”
“청춘은 도자기다. 어떤 가마, 온도냐에 따라 가지각색의 도자기가 탄생하듯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게 청춘이니까. 제 청춘 최고의 환경이 된 ‘청년출가학교’ 사랑합니다.”
 
39명의 행자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경내 자하루에는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한때 유행처럼 번져 이젠 청춘의 전제처럼 돼버린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청춘을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행자들은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입교 전 지원서에서 각기 하나 이상의 아픔을 간직하고 세상에서 겉도는 시간을 지낸 이 청년들에게 지난 일주일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존중과 존경의 의미로 서로에게 삼배를 올렸다. 인생을 걸어가는 도반들이다.

행자들은 첫날 입산과 동시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상과의 연결을 끊었다.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붉은 색 작은 봉투에 담고 부처님에게 오계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 몸을 깨우는 33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공양 후에는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각자의 소임지를 말끔히 정리했다. 삼삼오오 모여 차담을 나누고 틈틈이 지도법사와 일대일 만남 속에 고민도 털어놨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에게 수행법 가운데 하나인 염불을 배우기도 했고 찬불가를 익히는 시간도 가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와 ‘청년을 위한 불교’,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씨와는 ‘삶을 위한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책은 도끼다’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광고기획자 박웅현씨와 ‘감성과 창의력’에 대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이자 문학비평가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함돈균 교수와 ‘청춘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강좌는 듣는 것이 아닌 대화의 시간이었다. 강사진과 행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의문점들을 끊임없이 묻고 대답했다. 행자들은 질문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그야말로 스스로 삶에 대한 해답을 찾아갔다. 마치 부처님과 제자들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 회향식 자리정돈까지 다 끝난 후에야 행자들은 정든 도반을 안고 한참을 울다가 멋쩍게 웃었다.

6일째 되는 날에는 가슴 먹먹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이 울기도 했다. 지난 3일, 행자들은 세월호 침몰 이후 슬픔에 잠긴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체육관에서 ‘천수경’을 합송하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행자들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떠날 시간이 돼도 한동안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내 상황이 힘겹다는 이유로 세상일에 너무 무심했던 본인들의 행동을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도법사 스님들은 그날 이후 행자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2~3일이면 변화를 보였던 1~2기 행자들에 비해 반응이 더뎠던 3기 행자들이었다. 마지막날 원영 스님은 “해마다 참가자들의 결이 다른데 올해 행자들은 유난히 마음 속 고통을 꺼내 표현하는 것을 주저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온순했기에 평소에 더 크게 상처를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상처를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지만 학교를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가능할지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고 말했다.
 
처음 만남을 가졌을 때 행자들의 낮은 자존감과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될 줄 알았지만 막상 그렇지 않은 데서 오는 고민이었다.
 
▲ 희재(21) 행자는 회향식 전날 삭발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예전 모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8일간의 출가생활 속에서 스스로 느낀바가 컸던 행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생활 속 출가를 실천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이 풀리고 금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일상으로 돌아가기 직전 여행자 1명과 남행자 1명이 삭발을 감행했다.
 
“생각보다 훨씬 시려워요.”
희재(21) 행자가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쑥스럽게 만졌다.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냐는 질문에
“그러면 ‘너는 내 머리카락을 사랑한거구나!’하고 돌아서면 되죠”라고 말하곤 웃었다.
 
“그럴싸한 이유나 다짐보다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금세 예전 모습을 반복할 것 같아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늘 냉소적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던 희재 행자였다. 하지만 이날 만난 희재 행자는 얼굴에 장난이 가득한 20대 초반의 발랄 여대생이었다. 출가학교에서 웃음을 찾은 것이다. 출가학교 설립의 이유다.
 
법인 스님은 “청년출가학교는 오로지 출가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출가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삶의 대안으로 생활출가 실천을 제시하는 자리”라고 강조하며 “청년불교운동, 청년출가운동이 되기 위해 출가학교를 교구별로 확대하는 것도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지역불교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관심있는 사찰의 지원을 받아 올 겨울 4기 청년출가학교를 열 예정이다. 1기 청출일, 2기 청출이, 3기 청출삼에 이어 청출사 행자들에게 일어날 변화가 사뭇 궁금해진다.
회향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가람 행자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불교에 관심이 많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행자들을 보니 지금은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제 자신이 뿌듯해요. 책임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에 따른 목표가 생겼으니 돌아가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발우공양도 실천하고요.”
 
▲ 공양을 하러 가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밥 먹을 생각에 마음은 급하지만 수행자답게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놨다. 신발 맨 위에 그려진 자신만의 표시들에서 행자 개개인의 개성이 묻어난다.

눈을 반짝이던 가람 행자가 이제  새로운 젊은 날을 향한 여행에 한발을 내딛는다. 남들보다 늦은 건 없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한 길을 가느냐다. 잘 걸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여행 후 내 자신이 확연히 달라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걸음, 한걸음 용기를 내 발을 떼고 있다는 게 소중한 것이다.
 
세상 어디서나 비는 내린다. 누구나 마음에 비는 내린다. 누군가 건네는 우산을 나눠 쓰고 걷겠지만 비는 언젠가 그친다. 비 그치면 함께 썼던 우산은 접어야 하는 법. 청춘들은 인생에 닥칠 다음 비 소식에 각자 우산 펼치는 법을 배우고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해남=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253호 / 2014년 7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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