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조계종 비상사태 선포
22. 조계종 비상사태 선포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4.07.2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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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현 총무원장 비호하는 공권력에 맞선 저항의 물결
▲ 1994년 4월10일 승려대회 직후 개혁세력들은 총무원 청사 접수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측 스님들과 개혁세력들 간에 폭력사태가 발생하자 경찰병력이 즉각 투입됐다. 이후 4월13일 새벽 1시 경찰병력이 조계사에서 철수할 때까지 범종추 측 스님과 경찰들은 대치국면을 이어갔다. 종단개혁기념사업추진위 제공

“폭력과 같은 법질서 유린이나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은 어떤 이름으로도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없다. 조속히 난국을 수습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불교의 사명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1994년 4월10일 문화체육부 종무실장 호소문)
 
승려대회 후 총무원 진입시도
총무원·범종추 스님 폭력사태
폭력사태 확산되자 경찰진입

청사입구서 스님·재가자 해산
경찰·개혁세력 몸싸움도 벌여
개혁회의, 경찰 경내 진입규탄

혜암스님, 종단 비상사태 선포
비대위 구성…불교도대회 예고
정치권도 공권력투입 규탄동참
여론에 밀리자 13일 새벽 철수
 
1994년 4월10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언론들은 일제히 조계종 양분을 예고했다. 종단개혁에 대한 언급은 극히 미미했고 오로지 총무원측과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측간의 폭력사태를 집중 조명했다. 조계종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4월10일 전국승려대회에서 “총무원 청사를 접수하자”는 대중결의로 시작된 총무원 청사 진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력사태로 이어졌다. 총무원 측 스님들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분말소화기를 난사했다. 휘발유통을 들어 아래로 쏟아 부으며 “(올라오면)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식칼도 등장했다. 총무원 청사를 지키던 스님들은 긴 장대에 식칼을 매달아 아래층을 향해 휘둘렀다. 백주에 벌어진 스님들의 ‘시가전’에 지나가던 시민들은 혀를 내둘렀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짓는 신도들도 줄을 이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경찰은 5시10분경 조계사 인근에 배치돼 있던 서울전투기동대를 경내로 투입했다. 경찰은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즉각 공권력 투입을 예고했었다. 범종추 소속 스님들과 재가자들은 이를 제지했다. 스님들과 재가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내무부 장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동안 경찰과 대치했다. 그러나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에 나선 경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은 스님과 재가자들을 해산시키고 청사로 진입했다. 오후 8시경 경찰은 총무원 청사 1~3층에 있던 범종추 스님들을 모두 끌어내고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범종추 스님 80여명과 총무원 측 스님 50여명을 검거해 인근 경찰서로 연행했다.
 
그러나 경찰의 해산 작업에 물러섰던 스님과 재가자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청사로 진입했다. 혜암 스님 등 원로들을 앞세운 범종추 소속 스님 100여명은 총무원 청사 1층 강당에 모여 농성을 시작했다. 혜암·비룡·승찬·응담·지종·탄성 스님은 총무원 청사 1층에서 무기한 단식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이 다시 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범종추와 총무원 측 스님들에게 동시에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총무원 측 스님들은 “동시에 해산하면 범종추 세력이 청사를 점거할 것”이라며 거부했다. 결국 총무원 청사 1층은 범종추 스님이, 2~4층은 경찰이, 5층은 총무원 측 스님들이 각각 자리했다.
 
승려대회에 참석했던 스님과 재가자 1000여명은 조계사 대웅전으로 집결했다. 촛불을 켜고 경내에 경찰의 진입을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웅전을 돌며 침묵시위를 펼쳤다. 범종추와 총무원 측 스님, 경찰의 불편한 동거가 지속되면서 조계사 경내는 밤새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폭력사태로 총무원 청사는 폭격을 맞은 듯 유리파편과 파손된 기물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20여명의 스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다음날 언론들은 승려대회 이후 발생한 폭력사태를 앞다퉈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날의 사건을 종권다툼으로 진단했다. 조계종의 어두운 앞날을 전망하기도 했다.
 
 전날 승려대회를 통해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 집행부는 4월11일 오전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날 경찰의 조계사 진입을 성토하고 즉각 철수를 촉구했다. 또 성명을 통해 “종도들의 중지를 모으는 승려대회를 공권력 투입으로 유린한 이번 사태는 법난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사과와 최형우 내무부장관의 파면, 상무대 비자금 80억 원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국 사찰에 김영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해인사·송광사·통도사 등 주요사찰의 산문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총무원 청사 1층에서 단식을 하던 혜암 스님이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종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스님은 “정부가 전국승려대회에 무차별 공권력을 투입해 적법한 절차에 의한 총무원 청사 인수를 저지하고 승려들을 강제 연행했다”고 비판했다. 스님은 “경찰의 폭력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조계사에서 무기한 규탄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혁회의 측도 ‘비상사태대책위원회(비대위)’를 발족하고 위원장에 탄성 스님, 집행위원장에 도법 스님을 선임했다. 비대위는 조계사 내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후속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다. 비대위는 논의 끝에 4월13일 조계사에서 범불교도대회를 열어 정부를 비판하기로 뜻을 모았다.
 
교구본사 주지들도 정부 비판에 동참하고 나섰다. 교구본사 주지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승려대회는 역사를 열어가는 초합법적인 고유의 전통”이라며 “불교도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신속히 공권력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려대회에 대한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조계사에도 항의 정진에 동참하는 스님들이 늘어났다. 전국선원대표 100여명은 조계사에서 ‘비폭력 무저항 정신으로 용맹정진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재가자들의 동참도 잇따랐다. ‘불교 바로세우기 위한 재가불자연합’은 공권력에 의한 불교탄압 규탄과 불교개혁을 촉구하는 법회를 전국적으로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정부를 압박해 나갔다.
 
이날 오전 혜암 스님은 총무원 측 간부를 만나 ‘종단화합을 위한 절충안’을 제안했다. 혜암 스님은 교무부장 대우 스님 등 총무원측 스님을 만나 “종단화합을 위해 모든 권한을 원로회의에 위임하고 서암 종정과 의현 총무원장과 만나 분규타개책을 모색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승려대회에서 서암 종정과 의현 총무원장을 불신임 결의한 상태에서 종단화합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은 애초 총무원 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총무원 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날 오후 범종추 측 스님들은 다시 총무원 청사 진입을 시도했다. 청사 입구를 봉쇄한 경찰과 스님들 간의 거센 몸싸움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대웅전 옆 석등이 쓰러지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청사 진입에 실패한 스님과 재가자들은 다시 조계사 마당에 모여 이틀째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촛불을 들고 경내를 돌며 밤새 공권력 철수와 김영삼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경찰에 대한 범종추 스님들과 재가자들의 분노가 커졌다. 공권력이 총무원 측을 비호한다는 내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정대철 민주당 의원은 4월11일 조계사를 방문해 단식 중인 원로들을 만나 범종추 측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상무대 비자금의혹 사건과 조계사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며 정부를 몰아세웠다.
 
급기야 4월12일 오전 김도현 문화체육부 차관은 조계사를 찾아 정부 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김 차관은 “종교 내부의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질서 존중을 약속할 경우 병력을 즉각 철수시키겠지만, 폭력 등 법질서 파괴행위가 다시 벌어진다면 경찰의 재투입을 포함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범종추 측 스님과 재가자들은 또 다시 반발했다. 정부 방침은 사실상 의현 총무원장을 편들기 위한 공권력 행사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런 가운데 4월12일 오후 이상규 총무원 경리계장은 양심선언을 통해 “총무원이 종로경찰서 직원들을 접대했다”고 폭로했다. 이 계장은 “총무원측이 3월27~30일까지 4일간 종로경찰서 형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며 그 증거로 식당 회계장부를 공개했다. 그는 “총무원측이 접대한 형사들의 수는 하루 평균 22~25명 선이었다”며 “식사비로 총 1030여만 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경찰과 총무원의 유착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범종추 스님과 재가자들은 경찰을 압박했다. 총무원 청사를 막을 경찰의 명분도 점차 줄어들었다. 김도현 차관은 이날 밤 11시경 다시 조계사를 찾았다. 거듭된 공권력 철수요구를 외면하기에는 정부로서도 부담이었다. 김 차관은 개혁회의 측 대표에게 “총무원 점거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할 경우 경찰병력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4월13일 새벽 1시경 총무원 청사 주변이 동요했다. 총무원 청사를 지키던 의현 총무원장 측 스님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청사를 빠져 나갔다. 곧 이어 총무원 청사를 지키던 경찰 병력들도 순서대로 조계사 경내에서 철수했다. 개혁회의 측 스님과 재가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의현 총무원장 퇴진과 종단개혁을 내세우며 3월26일 구종법회부터 시작된 20여 일 간의 우여곡절 많은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55호 / 2014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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