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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주인은 신도들이다

강진의 B사는 풍광명미의 명찰이다.

30여년 전 처음 이 사찰을 찾았을 때 가을이었다. 눈 아래 가득히 펼쳐진 하얀 갈대숲과 그 너머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절경이었다. 그 후 봄에 들렸을 때는 아름다운 동백꽃이 만발한 숲속을 걸어 사찰에 이르렀다. 이런 풍광 때문에 B사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호남의 명찰이 되었다.
 
인연이 있어 20여년 전 B사의 천불전 조성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부모님들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족과 처가 모두 15위를 모시게 되었다. B사는 고려시대의 고승 원묘스님이 백련결사를 만든 곳이다. 따라서 나는 천불전에 모시는 분들의 정토왕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불사에 참여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비록 서울에 살지만 스스로 B사 신도라고 생각해왔었다.
 
2년 전부터 삼성동 봉은사 홈피의 ‘일상의 깨달음’에 ‘생명의 사랑’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 연재물은 선관책진(禪關策進)과 죽창수필(竹窓隨筆)의 저자인 명나라 고승 주굉(株宏) 대사가 중국에서 일어난 100개의 방생실화와 이에 따른 과보를 설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이 이야기들을 전 세계청소년들에게 보급하기 위하여 중국 불자들이 영어로 번역하고 그림을 덧붙인 것이 ‘생명의 사랑(The Love of Life)’이다.
 
생명의 사랑은 방생의 무량한 공덕을 중생들에게 알리기 위한 주굉 대사의 지극한 자비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생명을 해칠 때 돌아오는 재앙과 생명을 살릴 때 받는 행운을 알게 되어 자연히 미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물질의 가치를 최고로 치는 현대사회에서 생명의 존귀함은 설자리를 잃고 있으며 그 과보로 온갖 폭력에 가정, 사회, 국가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고 이를 실천할 때 큰 행운이 돌아옴을 알게 되면 자연히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여 봉은사 홈피에 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명의 사랑’이 시리즈로 봉은사 홈피에 게재되면 내가 이를 B사 홈피의 자유게시판에 옮겨 지난 2년간 어언 55회에 이르게 되었다. 고무적인 것은 B사 홈피에서 이 연재물을 읽는 독자가 점차 증가하여 55회의 경우 무려 3400명이 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21일 B사 홈피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다. 자유게시판에 연재된 ‘생명의 사랑’시리즈가 깡그리 사라진 것이다. B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총무스님이 홈피를 개편하면서 ‘생명의 사랑’ 시리즈를 스팸으로 처리하여 말소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이 스팸의 원 저자가 대 선지식인 주굉 대사이고 그 스팸을 2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봉은사가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날 자유게시판에서 ‘인심 야박한 B사’란 글을 보았다. 지난 7월19일 B사에 들렸는데 어느 보살이 점심공양을 하려하니 주지 스님이 왜 여행객에게 공양을 주냐며 공양주에 큰 소리로 야단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었다. 강진과 B사에 대한 이미지가 주지스님 한분 때문에 아주 나빠져 다시는 강진에 올 일이 없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름다운 강진과 명찰 B사의 이미지가 이런 스님에 의하여 실추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고 자비의 으뜸가는 실천은 생명의 사랑에 있다. 생명의 사랑 시리즈를 홈피에서 말소하고 점심공양을 준다고 공양주를 질책하는 스님들은 생명의 사랑과 배치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비구들은 스스로 청정한 도량을 떠나야 한다. 사찰의 주인은 신도이지 비구가 아니다. 신도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부적격의 비구들을 축출하는 데에 한국불교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255호 / 2014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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