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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20대와 ‘통일 정견’

군에 간 아들로 밤잠 못 이루는 부모가 부쩍 늘었다. 고참의 폭행으로 사망한 ‘윤 일병’에 이어 ‘관심병사’ 3명이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나서다. 앞서 최전방에선 총기난사까지 일어났다.
 
병영생활이 과거와 달리 민주화되었다고 막연히 생각해온 나로서는 지금 이 순간도 군에 복무하고 있을 20대의 고통을 망각하고 살아 왔다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31년 전의 다짐이 겹쳐서 더욱 그렇다. 전역명령서를 받은 날 저녁에 내무반에서 열린 회식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전역대상이 다섯 명으로 기억하는 데 회식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중대장이 내게 소감을 이야기해보라고 말했다. 감상에 마냥 젖어있던 나는 손사래 치며 일어서지 않았다. 그러자 인사계(중대 선임하사관)가 일어나라고 눈에 힘을 주었다. 할 말이 없다며 다시 사양하자 그가 다가왔다. 중대장 명령이라며 눈 부라렸다.
 
결국 일어났다. 내무반 사병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기에 나는 내무반에서 더는 폭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부했다. 설득력을 높이려고, 전역명령서를 받은 순간까지 군 복무 내내 ‘아래 군번’들에게 강압적인 어떤 언행도 하지 않은 사실을 밝혔다. 1980년 오월학살을 암시하며 나라를 지키는 군대에 몸담고 있다는 정당성이 없었기에 그랬다고 덧붙였다. 다시 자리에 앉고 조금 뒤 중대장이 자리를 떴다. 곧이어 인사계도 나갔지만, 나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상황인가를 짐작하지 못했다. 다시 내무반 문을 박차고 인사계가 들어와 분노의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내무반은 일순 얼어붙었다. 부동자세로 선 내게 인사계는 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에 중대장이 노발대발했다며 전역하는 날까지 야간 보초를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전역명령서를 받고 실제 전역하는 날까지 일주일 동안 내무반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말년 병장’의 호사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전역 날 새벽까지 보초를 섰다. 전역 신고하러간 내게 중대장은 머리가 길다며 깎고 오라 했다. 머리를 훈병처럼 깎고 신고를 다 마친 뒤 중대장에게 회식 때 고참들의 내무반 폭력을 줄이기 위해 한 말이었으니 오해 없기 바란다고 전했다. 사실 나는 육군 대위와 상사에 아무런 유감이 없었다. 지금도 그 순박한 중대장과 인사계가 직업군인으로 꿈을 이루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날 군문을 나서며 다음 세대는 젊은 시절을 자유롭게 보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병영에서 고참의 폭행치사가 일어난 사건을 접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겠다며 나름대로 언론활동에 열정을 쏟아왔지만, 2014년 현재 남북관계도 악화되어 있다.
 
병영에서 일어난 참극을 보며 2002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아픔도 다시 살아났다. 숙소인 고려호텔을 나와 평양의 아침을 산책하던 길에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라는 열일곱 살 학생을 등교 길에서 만났다. 졸업반이라는 그에게 그럼 내년에 음대에 가겠다고 물었을 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인민군을 다녀온 뒤 진학한다며 복무기간이 7년, 어쩌면 10년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린 대신 총을 들고 10년을 보냈을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 군대 생활을 거치며 음악적 감수성을 상실하진 않았을까.
 
대학에 몸담고 난 뒤, 입대한다며 연구실로 찾아오는 제자들을 볼 때도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병영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사실을 안 지금은 군에 간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해마다 군에서 120명이 생명을 잃는다는 통계는 끔찍하다.
 
찬찬히 짚어보자. 앞으로 50년, 길게 잡아 100년 뒤 남과 북이 통일 되었을 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은 2014년을 어떻게 볼까. 같은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면서 양쪽의 모든 청년을 2년에서 10년까지 복무케 한 사실을 어떻게 볼까. 그 시대 사람들은 애국심이 투철했다고 볼까. 악화된 남북관계 개선에 사부대중이 정견의 지혜를 모으고 적극 실행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1257호 / 2014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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