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장님
77. 장님
  • 이필원 박사
  • 승인 2014.08.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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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장님’이라고 표현한다.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고와 같은 어떤 후천적인 요인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육신(肉身)의 눈이란 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것일 뿐, 그 외의 어떤 다른 해석을 붙일 이유는 없다. 육신의 눈은 멀쩡하지만 마음의 눈이 닫힌 사람들이 있다. 사실 우리가 문제를 삼아야 하는 것은 ‘마음의 눈이 닫힌’ 사람이다. 마음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을 알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감’할 줄 모르게 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고 한다. 이는 끊임없이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감’이란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눈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편견을 갖는다. 이것이야말로 뒤바뀐 생각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전도(顚倒)된 생각이라고 한다.
 
경전에서는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장님’에 비유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 서로의 손을 잡고 길게 줄을 서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맨 앞에 선 사람도, 가운데 선 사람도 맨 뒤에 선 사람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Majjhima-nika-ya의 Subha sutta 중에서)
 
위의 인용문은 부처님께서 바라문 청년 수바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가르침은 말은 그럴 듯 하고 화려하게 하는데, 그 내용과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는 척하고 선동하게 되면, 그것은 장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이끄는 꼴이며, 아는 척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같은 경전에서는 말하는 방식에 대한 가르침도 나온다. 즉 바른 말이란 세상의 관례에 맞게 말해야 하며, 사유를 하고 말해야 하며, 깊이 성찰을 하고 말해야 하며, 합당한 근거를 갖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그의 말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말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는 말과 같다. 이러한 사람이 또한 장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른 눈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깊이 성찰하고, 합당한 근거를 갖고, 사회에서 합의한 방식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합의한 방식을 우리는 상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법규라고도 하고, 사회규칙이라고도 한다. 또는 관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을 바르게 알고 있어야 우리는 다른 사람과 바르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알지도 못하고 떠벌이는 말에 속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옳지 못한 길을 제시하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고, 따라야할 사람과 따르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바른 것을 구분하고 가려내지 못하는 것이 ‘장님’의 특징이다. 우리가 바른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저 욕망이 시키는 바에 충실하게 되면, 공감능력을 상실한 진짜 ‘장님’이 되는 것이다. 장님들 속에서 눈뜬 사람이 되라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7호 / 2014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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