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기러기 울음소리와 컴퓨터 게임
29. 기러기 울음소리와 컴퓨터 게임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4.08.18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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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시원하다. 밤시간이 되면 서늘하기까지 하다. 아침 종성 중에서 게송 하나를 읽어본다.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何事西風動林野 (하사서풍동임야)
一聲寒雁淚長天 (일성한안려장천)
 
산에 있는 절에서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아있노라니
마음도 고요해지고 주변도 고요해져서 본래자연 그대로일세
무슨 일로 가을바람 서풍은 고요한 숲을 흔들면서 불어오는가
한소리 차운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긴 하늘로 날아오르네.
 
산에 있는 절은 공간 중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다. ‘산당정야’는 가장 고요한 공간에서 맞이하는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템플스테이에서 감명깊이 다가오는 것이 바로 고요한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이 고요해져보는 것이다. ‘앉는다’는 것은 몸이 고요해지는 것이고 ‘말이 없다’는 것은 마음까지 고요한 것이다. 이 게송의 첫째 줄에서 시간과 공간과 몸과 마음이 다함께 고요해졌다.
 
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산중 시냇소리도 시끄러워
움직임 속 고요함 간직하면
주변과 내가 하나 됨 느껴
 
둘째 줄에서는 고요한 내 마음이 주변 공간의 적요함과 일체화된다. 그야말로 개미가 기어가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그 자체 속에 고요한 내가 그 고요함을 잊어버리고 고요하게 앉아있다. 목탁소리가 고요하게 새벽하늘을 소리없이 물들이는 고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첫째 줄과 둘째 줄은 고요함이고 셋째 줄과 넷째 줄은 움직임이다. 고요함만 찾는다면 시체가 고요하다. 시체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고요함 속에 내밀한 움직임이 동시에 들어있다. 서풍은 가을바람이다. 북풍은 겨울바람이다. 사실은 거 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아니다. 이 고요함 속에 앉아있는 사람이 느끼는 미세한 움직임의 가을바람이다. 그 움직임은 움직임 속에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은 주로 뺨을 스치지만 이 내밀한 가을바람은 전신의 골수 깊숙이 고요하게 불어온다.
 
넷째 줄에서는 시간과 공간과 몸과 마음과 주변과 나와 모두가 하나된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 기러기 울음소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찰나에 내가 앉아있는 지구와 하늘의 우주 공간이 하나가 된다.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축을 타고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지구를 뚫고 퍼져 나간다. 온 지구를 휘감싼 소리가 하늘로 다시 날아오른다.
 
이 게송은 장엄염불에도 나온다. 한 스님은 목탁을 치고 한 스님은 능숙한 솜씨로 요령을 흔들면서 ‘산당정야좌무언 나무아미타불, 적적요요본자연 나무아미타불, 하사서풍동임야 나무아미타불, 일성한안려장천 나무아미타불’하고 구성지게 염불을 하면 영가는 염불소리를 따라 극락세계로 바로 가고 염불을 듣고 있는 유족들은 염불소리를 듣고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극락이 된다.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두줄기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린다.
 
염불소리는 영가와 유족뿐만 아니라 앞산 뒷산의 소나무와 막 영글어가고 있는 마당 한켠의 대추까지 극락으로 인도한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구름위에 뜬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복잡한 도심 속 빵빵거리는 길에도 고요함은 있다. 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조용한 산중에서도 시냇물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다. 배가 아파서 밥먹기 싫다는 꼬마가 컴퓨터 게임은 아픈 줄도 모르고 신나게 몇 시간씩 해댄다. 지구놀이인지 지구살이인지 우리네 삶도 모두 모두가 꼬마들의 컴퓨터 게임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라는 생생한 컴퓨터 속에서 컴퓨터 속 인줄 까마득히 모르고 그냥 게임을 즐기는 것도 즐거운 게임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57호 / 2014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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