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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 뒤집어쓰기’와 세월호

기자명 함돈균
예쁜 표정으로 강의를 들어주었던 여학생에게 문득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선생님, ‘아이스버켓 첼린지’에 참여하는데 선생님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지목하여 당황하시는 일이 생기면 실례인 듯하여 미리 의사를 여쭤봅니다.”
 
‘아이스버켓 첼린지’라는 이름의 ‘얼음물 양동이 뒤집어쓰기 캠페인’은 루게릭병 환자 치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 이벤트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유명인들의 참여로 삽시간에 전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중인데,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지금 온라인에는 온통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연예인들 사진들로 가득하다.
 
아무튼 이 놀이 캠페인을 연예인들이나 하는 줄로 알던 내게, 참여를 부탁하는 이 메시지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일단 즐거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나 같은 평범한 일반인을 지목해주다니! 공개적으로 지목 받은 이가 자기 의사와 달라 곤혹스러워 할 것을 염려하여 미리 조용히 귀띔을 해주는 이 소녀의 사려 깊음이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생각’과 타인에 대한 배려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작금의 정치 현실이나 인터넷 댓글들 속에서 혀를 차던 나는 모처럼 흐뭇했다.
 
그러나 나는 이 칼럼을 통해 그 사려 깊은 소녀의 메시지에 대해 정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사양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전하고자 한다. 매우 드물지만 이 캠페인에 지목을 받고서 사양한 유명인으로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있다. 외신은 그가 좋은 행사에 정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난했다. 나는 오바마의 거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역대 세계 대통령 역사에서 가장 똑똑하고 사려 깊은 이 중 한 명인 오바마가 캠페인의 취지를 모독하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내용에는 좋은 형식이 필요하며, 같은 일에도 맥락과 주체의 위치나 사정에 따라 의미와 관점이 달라진다. 언론은 오바마가 캠페인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하지만, 그가 쓴 것은 자발적 비난의 양동이었다. 아마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대중의 열광을 얻는 일이, 오바마에게는 비난의 양동이를 뒤집어쓰는 일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특히 지명도 있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유례없는 ‘대중의 시대’다. 대다수 대중이 열광하는 일에 대해 지명도 있는 공인이 다른 관점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은 점점 더 보기 힘든 미덕이자 용기가 되고 있다.
 
이제 내 얘기를 하자. 행사의 취지를 알기에 나는 이 놀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다수 입장을 존중한다. 다만 난 다른 관점과 감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4.16(‘세월호’) 이후 나에게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란 트라우마다. ‘차가운 물’이 무섭고 슬프다. 여름 뙤약볕 아래 수백 킬로미터를 몇 킬로그램이나 되는 노란리본이 묶인 십자가를 지고 와서 광화문 광장에 기진맥진하게 쓰러졌다고 하여, 저 젊은 엄마와 아빠들이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 ‘시원한’ 표정을 지을 수 없을 것이 또한 분명하다.
 
얼음물통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몸을 적어도 지금의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얼음물의 시간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양동이에 든 얼음물도 누군가를 살리자는 취지의 물이겠으나, 내가 요즘 젖어있는 ‘생명의 물’의 이미지는 위에서 들이 붓는 게 아니라, 신체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발, 소년원 소년·소녀의 발을 닦아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족식 물 같은 것이다. 불경의 중요 경전 첫머리가 또한 부처의 발을 닦아주는 제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은 왜인가. ‘살린다’는 것은 낮은 자리를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1259호 / 2014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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