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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안 내소사 절 마당

병풍처럼 펼쳐진 뒷산과 기막힌 조화 이루는 미학 공간

▲ 부안 내소사는 건물과 그 사이의 빈 공간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마당 어디를 가든 걸음걸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돼 있다. 사진은 내소사 마당과 대웅보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객관적 관찰의 결과일까, 아니면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개인적 마음작용일까?
18세기 철학자들이 미학(美學)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미(美)를 인식하는 과정에 대해 숱한 연구가 이어져왔다. 지금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논제이지만 요즘은 미(美)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면 ‘황금비율’이라는 가설이 그것이다.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처음 주장했고,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정립한 이 이론은, 선분(線分)을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나눌 때 긴 부분과 짧은 부분의 비율이 ‘1.618: 1’일 때 가장 미적인 감흥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각진 곳 없이 대체로 둥글
건물도 짜임새 없이 듬성
인위적 꾸밈 철저히 배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살려

‘황금비율’로는 설명 어려운
한국적 아름다움 한껏 묻어나

절 마당에서 배워야 하는 건
세상사에 걸림 없이 사는 법

많은 학자들이 건축에서부터 조각, 회화 등 여러 미술 분야에 두루두루 이 이론을 적용하면서 아름다움을 해석할 만능의 열쇠처럼 여기고 있다. 황금비율로 미술품에 투영된 다양한 미의 스펙트럼을 객관적으로 걷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이라는 말이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데 객관화가 너무 강조되면 오히려 그런 마음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금비율이라는 건 미를 바라보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 수단일 뿐, 이것으로 모든 아름다움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이 너무 복잡하고 미묘하다. 결국 주관적 감성을 바탕으로 해서 여기에 객관적 이론을 적용해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우리나라 절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 마당의 아름다운 공간 구성이다. 사실 절의 영역은 마당에 가기 훨씬 앞서 만나는 장승이나 일주문 같은 경계부터 이미 시작된다. 그리고 이 경계를 지나면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부도밭을 지나기도 한다. 그 전에 ‘大小人員 皆下馬’라고 쓴 하마비(下馬碑)를 지나쳤을 수도 있다. 이 하마비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여기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절로 들어가라는 일종의 표지다. 여기를 다 지나 이제 절 마당에 들어서나보다 싶으면 길옆에 모여 있는 부도들이 눈길을 붙잡기도 한다. 우리 절 마당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법당이나 요사 등의 건물은 물론이고 정원, 연못, 담장, 석단(石壇), 꽃계단(花階), 부엌과 장독대 그리고 해우소 등 어디 한 곳도 우리의 전통적 아름다움에서 벗어난 게 없다. 따라서 절 마당이란 신앙의 공간만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이요 더 나아가 문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즉 절 마당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너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산사들은 앞마당에 불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수행과 생활공간을 위한 건물을 두고 앞쪽에 누각 형식의 건물을 두는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사는 금당을 위쪽에 두고 마당 사방에 골고루 건물을 배치하는 게 기본인데 이는 17세기 조선시대 중후기 이후 정착된 방식이다. 학술용어로는 ‘산지(山地) 중정형(中庭形) 배치’라고 부른다. 이때만 해도 넓은 마당에 비해 전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마당이 훨씬 넓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다양한 건물들이 절 마당에 들어서며 공간의 밀도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 무렵에는 민간 기술자들이 가람의 조성을 담당했는데, 그래서 규모가 작은 절의 건물은 민간 가옥과 비슷하게 되기도 했다. 또 대중들의 염불과 참선 수행을 위해 임진왜란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대방(大房)이라는 독특한 건물 양식도 나타났다. 대방은 큰 방과 승방, 부엌, 누마루를 갖춘 일종의 복합 건물형태다. 이 중 큰 방은 스님과 신도가 함께 모여 염불하고 식사도 하는 공간이고, 누마루는 의식을 열거나 평소엔 다담을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또 대방과는 별도로 스승과 제자가 한 건물에 같이 머물면서 독립된 공간을 지니는 별방(別房)도 이 무렵 절 마당에 새로 들어난 건축이었다. 건물이 많아진 탓에 공간은 분명 좁아졌건만 그런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는 데에 우리 절 마당의 멋이 있다. 건물이 돋보이지 않고 마당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공간구성은 확실히 미학적이라 할 만하다.

지상에서 가장 푸근한 곳이 집 아닐까. 그런데 이 집을 둘러싼 땅이 마당이니 집과 하나로 여겨 가꾸고 따스한 감성이 스며들어 있기 마련이다. 마당은 집에 들어서고 나올 때 꼭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아주 많아져 마당 밟을 일이 별로 없어져서 그런지 마당에서 느껴지는 푸근함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다행히 우리나라 절 가운데는 마당이 편한 곳이 많이 있다. 어디든 마당은 널찍하게 비워놓아 여백의 미가 한껏 느껴진다. 건물들은 마당 둘레에 자리하는데 그 배치를 선으로 연결해보면 딱딱한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가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하다. 또 건물과 그 사이의 빈 공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당 어디를 가든 걸음걸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이렇게 마당 좋은 절 가운데서도 특히 내소사 마당은 여기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저도 모르게 편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공간의 너비는 영주 부석사의 그것보다는 조금 넓고 고창 선운사 마당보다는 약간 좁게 느껴져 딱 그 중간쯤이다. 내소사 마당은 봉래루 누각 밑으로 난 짧은 돌계단을 다 밟고 올라서면 나온다. 대웅보전을 마주한 채 마당을 쭉 둘러보면 각이 진 곳이 별로 없고 둥글둥글 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웅보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과 저 멀리 자리한 산봉우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마당 위에서 파노라마를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북쪽 위로 치우쳐 대웅보전이 자리하는데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그 뒤로 마치 병풍마냥 펼쳐진 뒷산이 기막히게 마당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 본다. 어디든 금당 뒤는 대체로 이렇게 산봉우리가 옹위하고 있지만 내소사 뒷산은 유달리 푸근해 수수한 ‘마당지기’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생생한 맛이 나는데다가, 처마 아래 걸린 ‘大雄寶殿’이라고 쓴 편액 글씨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선시대 후기의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썼는데 굵고 반듯한 여느 글씨와는 달리 꾸불꾸불하고 가늘어 색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꾸미지 않은 모습을 한 이 절 마당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쓰느라 그랬는지 모른다. 금당의 편액글씨마저 이렇게 마당과 어울리는 곳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로, 내소사 절 마당에 선 사람들은 덤으로 보기 드문 구경을 했으니 여기까지 온 발품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붕이나 기둥이나 단청이 거의 벗겨졌으나 한편으론 그 덕에 나뭇결이 자연 그대로 드러나 고색창연한 맛이 한껏 풍기고 있다. 종교적으로 장엄미를 우선시하기 쉬운 법당에 어찌 보면 흐물흐물한 글씨를 건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강진 백련사 ‘大雄寶殿’ 편액에서 한 번 더 나타나는데, 백련사 절 마당 역시 담백함 면에서 내소사와 닮았다.

내소사 절 마당은 반듯하게 구획되었다기보다 뭉툭해 보이고 건물도 짜임새 있게 배치된 게 아니라 듬성듬성 놓여있는 듯이 보인다. 황금비율로는 도저히 설명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대웅보전 주위로 설선당과 무설당 요사가 두 날개 마냥 자리해 있고 대웅보전 앞에 왼쪽으로 치우쳐 삼층석탑이 마당에 어울리게 알맞은 크기로 서 있다. 내소사 마당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잘 정돈되어서도, 또 반듯하게 놓여서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거친 듯도 하지만 그것이 인위의 꾸밈을 배제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아 반갑다. 절 마당에서 힘든 세상살이 매사에 걸림 없이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읽는다면 과장일까? 하지만 절 마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분명 주관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

어느 절이나 공간의 중심은 금당이 차지한다. 금당은 거의 대부분 북쪽 위로 치우쳐 자리하기 때문에 우리 절의 마당은 본래 자리한 터보다는 공간이 넓게 나오게 된다. 그래서 비록 협소한 산지에 옹색하게 들어설 수밖에 없는 산사라 하더라도 막상 마당에 서면 공간이 생각보다 넓게 느껴지곤 한다. 이것 역시 우리 절 마당의 멋이요 미학 중의 하나일 것이다. 좁지 않고 넓게 확 트이는 맛, 절 마당에 선 사람들더러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넓고 크게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소사 절 마당의 숨겨진 멋은 나지막한 석단으로 구획된 상하 공간 구조를 알아야 느낄 수 있다. 사실 절 마당은 남쪽에서 북쪽, 혹은 아래서 위로 갈수록 높아지는 게 보통이다. 산사라는 입지 때문에도 그렇고 또 종교적 관점으로도 금당 쪽으로 갈수록 마당을 높게 다져야 한다. 이때 기울기가 크면 건물을 세우기도 그렇고 마당을 거닐기에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마당을 평평하게 다지되 일정 거리마다 위로 한 단(段)씩 높이는 방법을 썼다. 내소사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놀라운 건 대웅보전을 향해 걸으면서도 자신이 한 단씩 올라간다는 느낌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각 단이 아주 자연스럽게 구획되어 인위적인 느낌이 안 드는 데다 마당의 모습도 주변 건물과 아주 잘 어울리고 있어 저도 모르게 동화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집 마당을 밟을 일이 별로 없게 된 현대 사람들일수록 절 마당을 자주 찾아보기를 권한다. 마당을 보고 따스한 정도 느끼고 거기서 비롯된 아름다움도 봐야 우리 사찰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는 게 아닌가 말하고 싶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1260호 / 2014년 9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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